八竹詩(팔죽시)-浮雪居士
八竹詩(팔죽시)
浮雪居士
此竹彼竹 化去竹(차죽피죽 화거죽)
이런대로 저런대로 되어가는 대로
風打之竹 浪打竹(풍타지죽 랑타죽)
바람 부는 대로 물결 치는 대로
粥粥飯飯 生此竹(죽죽반반 생차죽)
죽이면 죽. 밥이면 밥 생기는대로
是是非非 看彼竹(시시비비간피죽)
옳고 그름은 보여지는 대로
賓客接待 家勢竹(빈객접대가세죽)
손님 접대는 집안 형편대로
市井賣買 歲月竹(시정매매 세월죽)
시정의 사고 파는 것은 세월대로
萬事不如 吾心竹(만사불여 오심죽)
세상만사 내 마음 같지 않은대로
然然然世 過然竹(연연연세 과연죽)
그렇게 그렇게 세상 가는 대로
*월명암(月明庵)과 부설거사(浮雪居師)
부설거사는 신라 진덕여왕(제 28대) 때의 이름 높은 고승 이었다.
이웃 김제 만경에서 태어났다 하며 속명은 진광세(陳光世)라 했는데,
어려서 출가하여 이 곳 변산의 월명암에서
영조(靈照), 영희(靈熙)와 함께 수도를 하였다 한다.
길을 떠나 가는데 고향인 만경(萬頃) 못 미쳐 무능이라는 데를
지나다 날이 저물어 구씨라는 사람의 집에서
하룻밤을 묵어가게 되었다.
그런데 이 구씨(具氏) 집에는 묘화(妙花)라는 벙어리 딸이 하나 있었는데
이 벙어리 묘화가 하룻밤 묵어 가는 세 수도승 가운데 부설을 보더니
원래 부처님 곁에 피어 있는 연꽃 한송이를 꺾은 죄로 벙어리가 되어
부설에게 결혼하여 줄 것을 간청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큰 뜻을 품고 수도의 길을 떠나는 부설이 들어 줄 리가 없었다.
어찌 한 여인의 작은 소망을 위하여 장부의 큰 뜻을 꺾으려 하오 하고
일언지하에 거절하였다.
그랬더니 묘화가 하는 말이그대의 큰 뜻을 어찌 꺾으려 하겠습니까?
그대는 불도를 깊이 닦아
수많은 중생을 구제하려 한다면서 어찌 소녀의 소박한 소망 하나 들어
주지 못하고 그로 인하여 뒷 날, 많은 중생을 구제하기에 앞서
우선 눈앞에 있는 이 불쌍한 소녀부터 구제하라는
내가 죽게 되면 장차 큰 뜻을 편다 하여 무슨 뜻이 있겠나이까?
묘화의 끈질긴 요구에 감동한 부설은 자기의 뜻을 굽혀 묘화와
결혼하기로 하였으며, 두 친구 영조와 영희는 오대산으로 떠났다.
부설은 묘화와 결혼하여 아들. 딸 남매를 낳고 살면서 아내와
더불어 쉬지 않고 공부를 계속하였다.
그가 사는 마을의 하늘엔 언제나 하얀 눈이 떠돌아 다녔다 하여
사람들은 두능리 마을을 부설촌(浮雪村)이라 부르게 되었으며
부설거사의 법명도 여기에서 땄다고 한다.
이렇게 아들 딸 낳고 끊임없는 수도생활에 힘쓰며 살아가는데 하루는
오대산으로 공부하러 갔던 영조, 영희 두 친구가 찾아 왔다.
반갑게 맞이하는 부설을 보고 두 친구가 하는 말이
그대는 여자에게 빠져 낙오자가 되어 버렸으니
참으로 아깝고 가엾은 일이네 하고 비웃음 반, 위로 반으로
말하는 것이었다. 옆에서 이를 듣고 있던 묘화부인이 말하기를
“그렇다면 내 남편과 그대들 중 누가 더 깊은 공부를 하였는지 한번
도력을 겨루어 보시지요” 하였다.
그리하여 병 세개에다 물을 가득 담아 벽에 걸어놓고
그들에게 방망이로 병을 쳐보라 하니, 병이 깨어지면서 병 속의 물이 쏟아졌다.
이어서 부설거사가 남은 병을 치니 병만 깨어지고 병모양을 한 물은
그대로 공중에 매달려 있는 게 아닌가!
이를 본 두 스님은 아무 말도 못하고 서둘러 떠나버렸다.
신라 신문왕 12년(692년) 내외는 남매를 데리고 지난날 공부하였던 변산으로
들어가 월명암 근처에 부설암을 지었다.
묘화부인을 위해서는 묘적암을 세웠으며, 아들 등운(登雲)을 위해
월명암 뒤에 등운사를, 딸 월명(月明)을 위하여는
지금의 월명암(月明庵)자리에 월명암을 지어 일가족이
모두 불도를 깨우쳐 널리 펼쳤는데 이때부터 변산에서
불교가 크게 융성하게 되었다고 한다.
월명암은 내소사의 말사로, 전북 부안군 산내면 중계리 변산반도
봉래산 쌍선봉 아래 있으며,
이름 그대로 어둠 속의 인간들에게 길을 비춰주는 달빛[월명]이 되고 있다.
대竹자를 ~대로라는 뜻으로 썼으니 해학, 위트가 넘친다.
市井賣買歲月竹을 다른 곳에서는 時勢竹으로 나와 있는 곳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