芙蓉相思曲(부용상사곡)

芙蓉相思曲(부용상사곡)-寶塔詩(보탑시)

華谷.千里香 2016. 2. 8. 08:36




芙蓉相思曲(부용상사곡)-寶塔詩(보탑시)

              金芙蓉(김부용)-雲楚
別(별)

이별하옵니다

思(사)

그립습니다

路遠(노원)

길은 멀고

信遲(신지)

글월은 더디옵니다

念在彼(념재피)

생각은 님께 있으나

身留玆(신유자)

몸은 이 곳에 머뭅니다

紗巾有淚(사건유루)

비단 수건은 눈물에 젖었건만

雁書無期(안서무기)

가까이 모실 날은 기약이 없습니다

香閣鍾鳴夜(향각종명야)

향각서 종소리 들려 오는 이 밤

鍊亭月上時(연정월상시)

연광정에서 달이 떠오르는 이 때

依孤枕驚殘夢(의고침경잔몽)

쓸쓸한 베게에 의지했다가 잔몽에 놀라 깨어

望歸雲悵遠離(망귀운창원리)

돌아오는 구름을 바라보니 멀리 떨어져 있음이 슬픔니다

日待佳期愁屈指(일대가기수굴지)

만날 날 수심으로 날마다 손꼽아 기다리며

晨開情札泣支頣(신개정찰읍지신)

새벽이면 정다운 글월 펴 들고 턱을 괴고 우옵니다

容貌憔悴把鏡下淚(용모초췌파경하누)

용모는 초췌해져 거울을 대하니 눈물 뿐이고

歌聲鳴咽對人含悲(가성명열대인함비)

목소리도 흐느끼니 사람 기다리기가 이다지도 슬픔니다

掣銀刀斷弱腸非難事(체은도단약장비난사)

은장도로 장을 끊어 죽는 일은 어렵지 않으나

躡珠履送遠眸更多疑(섭주리송원모경다의)

비단신 끌며 먼 하늘 바라보니 의심도 많습니다

朝遠望暮遠望郎何無信(조원망모원망낭하무신)

아침에도 멀리 바라보고 저녘에도 멀리 바라보니

낭군은 어찌 그리 신의가 없읍니까

昨不來今不來妾獨見欺(작불래금불래첩독견기)

어제도 안 오시고 오늘도 안 오시니 첩만 홀로 속고있는 것은 아닌가요

浿江成平陸後鞭馬惝過否(패강성평육후편마상과부)

대동강이 평지가 된 뒤에나 말을 몰고 오시려 합니까

長林變大海初乘船欲渡之(장림변대해초승선욕도지)

장림이 바다로 변한 뒤 노를 저어 배를 타고 오렵니까

見時少別時多世情無人可測(견시소별시다세정무인가측)

이별은 많고 만남은 적으니 세상사를 누가 알 수 있으며

好緣短惡緣長天意有誰能知(호연단악연장천의유수능지)

악연은 길고 호연은 짧으니 하늘의 뜻을 누가 알 수 있겠읍니까

一片香雲楚臺夜神女之夢在某(일편향운초대야신녀지몽재모)

운우무산에 행적이 끊기었으니 선녀의 꿈을 어느 여자와 즐기시나요

數聲良簀柰樓月弄玉之情屬誰(수성양책내루월농옥지정속수)

월하봉대에 피리 소리 끊기었으니 농옥의 정을 어떤 여자와 나누고 계십니까

欲忘難忘强登浮碧樓可惜紅顔老(욕망난망강등부벽루가석홍안노)

잊고자해도 잊기가 어려워 억지로 부벽루에 오르니 안타깝게도 홍안만 늙어가고

不思自思乍倚牡丹峯每歎綠髮衰(불사자사사의모단봉매탄녹발쇠)

생각치 말자해도 절로 생각나 몸을 모란봉에 의지하니 슬프도다

검은 머리 자꾸 쇠해가고

獨宿空房下淚如雨三生佳約寧有變(독숙공방하누여우삼생가약녕유변)

홀로 빈 방에 누우니 눈물이 비오 듯하나 삼생의 가약이야 어찌 변할 수 있으며

孤處香閨頭雖欲雪百年貞心自不移(고처향규두수욕설백년정심자부이)

혼자 잠자리에 누었으나 검은 머리 파뿌리 된들

백년 정심이야 어찌 바꿀 수 있으랴

罷春夢開竹窓迎花柳少年總是無情客(파춘몽개죽창영화류소년총시무정객)

낮잠을 깨어 창을 열고 화류계년을 맞아들여 즐기기도 했으나

모두 정 없는 나그네 뿐이고

推玉枕攬香衣送歌舞者類莫非可憎兒(추옥침람향의송가무자류막비가증아)

베게를 밀고 향내 나는 옷으로 춤을 춰 보았으나 모두가 가증한 사내 뿐 입니다.

千里待人難待人難甚矣君子薄情豈如是(천리대인난대인난심의군자박정기여시)

천리에 사람 기다리기 어렵고 사람 기다리기 이토록 어려우니

군자의 박정은 어찌 이다지도 심하십니까

三時出門望出門望悲哉賤妾苦懷果何其(삼시출문망출문망비재천첩고회과하기)

삼시에 문을 나가 멀리 바라보니 문을 나가 바라보기 애처로운 천첩의

심정은 과연 어떠하겠습니까

惟願寬仁大丈夫決意渡江舊緣燭下欣相對(유원관인대장부결의도강구연촉하흔상대)

오직 바라옵건데 관인하신 대장부께서는

강을 건너 오셔서 구연의 촛불 아래 흔연히 대해 주시고

勿使軟弱兒女子含淚歸泉哀魂月中泣相隨(물사연약아녀자함누귀천애혼월중읍상수)

연약한 아녀자가 슬픔을 머금고 황천객이 되어 외로운 혼이

달 가운데서 길이 울지 않게 해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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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조 순조임금때 기생 雲楚(운초) 金芙蓉(김부용)의

芙蓉相思曲(부용상사곡)으로 寶塔詩(보탑시)이다.

이행마다 한글자씩 늘어나 18자 까지 되는 36행 문자탑이다.
'보탑시'란 아주 쉽게 말하여 詩로서 탑을 쌓은 것이다.

김이양이 한양으로 떠난뒤 그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한장 한장 벽돌같이 탑을 쌓은 시이다.

송도의 황진이,부안의 이매창과 더불어 시 잘짓고

노래 잘하는 조선3대 명기(名妓)라 불린다.
김부용의 나이 열아홉이었을 때 성천부사로 부임한 신임 사또가 운초를

어여삐 보아 자신의 스승인 평양감사 金履陽(김이양)에게 소개 하였다.

그 때 김이양의 나이 일흔일곱이었다.
김이양은 풍채가 뛰어나고 시문(詩文)에도 능한 사람이었다.


김이양도 젊은 시절 찢어질 듯 가난하였다.

하루는 저녘도 못먹고 자는데 도둑이 들었다.
도둑은 훔쳐갈 쌀이 없자 솥단지를 뜯어가려 했다.

이 소리를 들은 부인이 남편 김이양에게 말하자

김이양은 '오죽하면 남의 솥을 떼어 가겠소.

우리보다 못한 사람이니 그냥 놔 둡시다"라고 하였는데

이 말을 들은 도둑은 크게 깨달아 솥을 두고 갔으며

그 후 열심히 일하여 큰 부자가 되었다.


훗 날 김이양이 장원급제하여 옥당학사로 있을 때

옛 은혜를 갚고자 찾아왔고 두 사람은 백년지기보다 더한

우정의 친구가 되었다는 마치 전설같은 일화를 남긴 분이다.
비록 늙은이였지만 운초는 김감사에 반하였다.
김이양이 제자의 청(請)을 거절하자 김부용은 김감사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뜻이 같고 마음이 통한다면 나이가 무슨 상관이겠읍니까?

세상에는 삼십객 노인이 있는 반면 팔십객 청춘도 있는 법입니다"라는

말은 유명하다. 

이 말에 김이양은 운초의 청을 허락하였다.
김이양이 호조판서가 되어 평양을 떠날 때 운초를 妓籍(기적)에서 빼내어

첩실로 삼고 후일을 기약하고 혼자 한양으로 향했다.


김이양은 92세에 운명하였고 그 때 운초의 나이 겨우 33세였다.
운초는 김이양이 죽은 후 모든 인연을 끊고 김이양을 그리며 살다 죽었다 한다.
운초 역시 김이양이 죽은 녹천당에서 운명하였고 첩실인 관계로

합장은 불가했고 김이양의 묘소 아래에 묻쳤다.


*雲楚.金芙蓉 묘는 천안 태화산 광덕사 삼거리 오른쪽에 위치해 있다.

   입구에는 朝鮮時代 女流詩人 雲楚 金芙蓉墓라 푯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