雜記帳(잡기장)

老處女歌(노처녀가) 2.

華谷.千里香 2019. 5. 23. 00:57






老處女歌(노처녀가)  2.

옛적에 한 여자가 있느되 일신이 갖은 병신이라
나이 사십이 넘도록 출가치 못하여
그저 처녀로 있으니 옥빈홍안(玉鬢紅顔)이 스스로 늙어가고
설화부용(雪花芙蓉)이 공연히 없어지니 설움이 골수에 맺히고
분함이 심중에 가득하여 미친 듯 취한 듯 좌불안석하여
세월을 보내더니 일일(一日)은 가만히 탄식 왈(曰)
하늘이 음양을 내시매 다 각기 정함이 있거늘
나는 어찌하여 이러한고 섧기도 측량(測量)없고
분하기도 그지없네 이처로 방황하더니
문득 노래를 지어 화창(話唱)하니 갈왔으되


어와 내 몸이여 섧고도 분한지고 이 설움을 어이하리
인간만사 설운 중에 이내 설움 같을손가
설운 말 하자 하니 부끄럽기 측량없고
분한 말 하자 하니 가슴 답답 그 뉘 알리
남 모르는 이런 설움 천지간에 또 있는가
밥이 없어 설워할까 옷이 없어 설워할까
이 설움을 어이 풀리 부모님도 야속하고
친척들도 무정하다 내 본시 둘째딸로
쓸데없다 하려니와 내 나이를 헤어보니
오십줄에 들었구나 먼저는 우리 형님
십구 세에 시집가고 셋째의 아우년은
이십에 서방 맞아 태평으로 지내는데
불쌍한 이내 몸은 어찌 그리 이러한고
어느덧 늙어지고 츠릉군이 되었구나
시집이 어떠한지 서방맛이 어떠한지
생각하면 싱숭생숭 쓴지 단지 내 몰라라
내 비록 병신이나 남과 같이 못할쏘냐
내 얼굴 얽다 마소 얽은 궁게 슬기 들고
내 얼굴 검다 마소 분칠하면 아니흴까
한 편 눈이 멀었으나 한 편 눈은 밝아 있네
바늘귀를 능히 꿰니 보선볼을 못 박으며
귀먹다 나무라나 크게 하면 알아듣고
천둥소리 능히 듣네
오른손으로 밥 먹으니 왼손 하여 무엇 할꼬
왼편 다리 병신이나 뒷간 출입 능히 하고
콧구멍이 맥맥하나 내음새는 일쑤 맡네
입시음이 푸르기는 연지빛을 발라보세
엉덩뼈가 너르기는 해산 잘할 장본(張本)이오
목이 비록 옴쳤으나 만져보면 없을 쏜가
내 얼굴 볼작시면
곱든 비록 아니하나 일등 수모(手母) 불러다가
헌거롭게 단장하면 남대되 맞는 서방
낸들 설마 못 맞을까 얼굴 모양 그만두고
시속행실 으뜸이니 내 본시 총명키로
무슨 노릇 못할소냐 기역 자(字) 나냐 자를
십년만에 깨쳐내니 효행록 열녀전을
무수히 숙독하매 모를 행실 바이 없고
구고(舅姑)이 모인 곳에 방귀 뀌어본 일 없고
밥주걱 엎어놓아 이를 죽여본 일 없네
장독소래 벗겨내어 뒷물 그릇 한 일 없고
양치대를 집어내어 추목하여본 일 없네
이내 행실 이만하면 어디 가서 못 살쏜가
행실 자랑 이만하고 재조 자랑 들어보소
도포 짓는 수품(手品)알고
홑옷이며 핫옷이며 누비 상침 모를쏜가
세 폭 붙이 홑이불을 삼일만에 맞춰내고
행주치마 지어낼 제 다시 고쳐본 일 없네
함박쪽박 깨어지면 솔뿌리로 기워내고
버선본를 못 얻으면 닛뷔자로 제일이오
보자(褓子)를 지을 제는 안반(案盤)놓고 말아내니
슬기가 이만하고 재조가 이만하면
음식 숙설(熟設) 못할쏜가
수수전병 부칠 제는 외꼭지를 잊지 말며
상치쌈을 먹을 제는 고추장이 제일이오
청국장을 담을 제는 묵은 콩이 맛이 없네
청대콩을 삶지 말고 모닥불에 구워 먹소
음식묘리(飮食妙理) 이만 알면 봉제서(奉祭祀)를 못할쏜가
내 얼굴 이만하고 내 행실 이만하면
무슨 일이 막힐쏜가
남이라 별 수 있고 인물인들 별날쏜가
남대되 맞는 서방 내 홀로 못 맞으니
어찌 아니 설울쏜가
서방만 얻었으면 뒤 거두기 잘 못할까
내 모양 볼작시면 어른인지 아해런지
바람 맞은 병인(病人)인지 광객(狂客)인지 취객인지
열없기도 그지없고 부끄럽기 측량없네
어와 설운지고 내 설움 어이할꼬
뒤 귀밑에 흰 털 나고 이마 위에 살 잡히니
운빈화안(雲鬢花顔)이 어느덧에 어데 가고 속절없이 되었구나
긴 한숨에 자른 한숨
먹는 것도 귀치않고 입는 것도 좋지 않다
어른인 체하자 하니 머리 땋은 어른 없고
내인(內人)이라 하자 하니 귀밑머리 그저 있네
얼씨고 좋을씨고 우리 형님 혼인할 제
숙수(熟手) 앉혀 음식하며 지의(地衣) 깔고 차일 치며
모란병풍 둘러치고 교주상에 와룡촉대(臥龍燭臺) 세워놓고
부용향(芙蓉香) 피우면서 나주불 질러놓고
신랑 온다 왁자하고 전안(奠雁)한다 초례(醮禮)한다
왼 집안이 들빌 적에 빈 방안에 혼자 있어
창틈으로 여어보니 신랑의 풍신 좋고
사모풍대 더욱 좋다 형님도 저러하니
나도 아니 저러하랴 차례로 할작시면
내 아니 둘째런가 형님을 치웠으니
나도 저러할 것이라 이처로 정한 마음
그대로 아니 되어 괴악(怪惡)한 아우년이
먼저 출가한단 말가 꿈결에나 생각하며
의심이나 있을쏜가 도래떡이 안팎 없고
후생목(後生木)이 우뚝하다
원수로 온 중매어미 날은 아니 치워주고
사주단자(四柱單子) 의양단자(衣樣單子) 오락가락 하올적에
내 비록 미련하나 눈치조차 없을쏜가
용심(用心)이 절로 나고 화증(火症)이 복발(復發)한다
풀쳐 생각 잠깐 하면 선하품이 절로 난다
만사에 무심하니
앉으면 눕기 좋고 누으면 일기 싫다
손님 보기 부끄럽고 일가 보기 더욱 싫다
이 신세를 어이할꼬 살고 싶은 뜻이 없네
간수 먹고 죽자한들 목이 쓰려 어찌 먹고
비상 먹고 죽자한들 내음새를 어찌할꼬
부모유체(父母遺體)난처하다 이런 생각 저런 생각
빈방 중에 혼자 앉아 온가지로 생각하나
입맛만 없어지고 인물만 초췌하다
생각을 마자 하나 스스로 먼저 나네
곤충도 짝이 있고 금수도 자웅(雌雄)있고
헌 짚신도 짝이 있어 음양의 배합법을
낸들 아니 모를쏜가 부모님도 보기 싫고
형님도 보기 싫고 아우년도 보기 싫다
날다려 이른 말이 불상하다 하는 소리
더구나 듣기 싫고 눈물만 솟아나네
내 신세 이러하고 내 마음 이러한들
뉘라서 걱정하며 뉘라서 염려하리
이런 생각 마자 하고 혼자 앉아 맹세하여
마음을 활짝 풀고 잠이나 자자하니
무슨 잠이 차마 오며 자고 깨면 원통하다
아무 사람 만나볼 제 헛웃음이 절로 나고
무안하여 돌아서면 긴 한숨이 절로 나네
웃지 말고 새침하면 남 보기에 매몰하고
게정풀이 하자 하면 심술궂은 사람되네
아무리 생각하나 이런 팔자 또 있는가
이리 하기 더 어렵고 저리 하기 더 어렵다
아주 죽어 잊자함이 한두 번이 아니로되
목숨이 길었던지 무슨 낙을 보렸던지
날이 가고 달이 가매 갈수록 설운 심사
어찌하고 어찌하리 베개를 탁 던지고
입은 채 드러누워 옷가슴을 활짝 열고
가슴을 두드리며 답답하고 답답하다
이 마음을 어찌할꼬 미친 마음 절로 난다
대체로 생각하면 내가 결단 못할쏜가
부모동생 믿다가는 서방맞이 망연(茫然)하다
오늘 밤이 어서 가고 내일 아침 돌아오면  
중매파(仲媒婆)를 불러다가 기운 조작으로 표차로이
구혼하면 어찌 아니 못될쏜가
이처로 생각하니 없던 웃음 절로 난다
음식 먹고 체한 병에 정기산(正氣散)을 먹은 듯이
급히 앓는 곽란병(霍亂病)에 청심환을 먹은 듯이
화짝 일어 앉으면서 돌통대를 입에 물고
끄덕이며 궁리하되
내 서방을 내 갈히지 남다려 부탁할까
내 어찌 미련하여 이 의사(意思)르 못 냈던고
만일 벌써 깨쳤더면 이 모양이 되었을까
청각(聽覺)먹고 생각하니 아주 쉬운 일이로다
적은 염치 돌아보면 어느 년(年)에 출가할까
고름 맺고 내기하며 손바닥에 침을 뱉아
맹세하고 이른 말이
내 팔자에 탕인 서방 어떤 사람 몫에 질꼬
쇠침이나 하여보세 알고지고 알고지고
어서 바삐 알고지고 내 서방이 뉘가 되며
내 낭군이 뉘가 될까 천정배필(天定配匹) 있었으면
제라서 마다 한들 내 고집 내 억지로
우김성에 아니 들까 소문에도 들었으니
내 눈에 아니 들까 저 건너 김도령이
날과 서로 연갑(年甲)이오 뒤 골목에 권수재(秀才)는
내 나보단 더 한지라 인물 좋고 줄기차니
수망(首望)에는 김도령이오 부망(副望)에는 권수재라
각각 성명 써가지고 쇠침통을 흔들면서
손 고초와 비는 말이 모년 모월 모일 야(夜)에
나이 사십 넘은 노처녀는 엎디어 묻잡나니
곽곽선생 이순풍(李淳風)과 소강절(邵康節) 원천강(袁天剛)은
신지영(神祗靈)하오시니 감이순통(感而順通)하옵소서
후취(後娶)에 참여할까 삼취(三娶)에 참여할까
김도령이 배필 될까 권수재가 배필 될까
내 일로 되게 하여 신통함을 뵈옵소서
흔들흔들 높이 들어 소침 하나 빼어내니
수망(首望)치던 김도령이 첫가락에 나단말가
얼씨고 좋을씨고 이야 아니 무던하냐
평생 소원 이뤘구나 옳다 옳다 이제는
큰 소리를 하여보자 형님 불워 쓸데없고
아우년 저만 것이 나를 어이 숭을 보랴
큰 기침 절로 나고 어깨춤이 절로 난다
누워시락 앉아시락 지게문을 자주 열며
어찌 오늘 더디 새노 오늘 밤은 긺도 길다
역정스레 누으면서 기지개를 길게 켜고
이리저리 돌아누으며 이마 위에 손을 얹고
정신을 진정하니 잠간 사이 잠이 온다
평생에 맺힌 인연 오늘 밤 춘몽중(春夢中)에
혼인이 되었구나
앞뜰에 차일 치고 뒷뜰에 숙수 앉고
화문방석(花紋方席) 만화방석(滿花方席)
안팎 없이 포설(鋪設)하고 일가권속 가득 모여
가화(假花) 꽃은 다담상이 이리저리 오락가락
형님이며 아주미며 아우년 조카붙이
긴 담장 자른 담장 거룩하게 모였으니
일기는 화창하고 향내는 촉비(觸鼻)한다
문전이 요란하며 신랑을 맞아들 제
위의(威儀)도 거룩하다
차일 밑에 전안(奠雁)하고 초례하러 들어올 제
내 몸을 굽어보니 어이 그리 잘났던고
큰머리 떠는 잠(簪)에 준주투심 갖추오고
귀의 고리 용잠(龍簪)이며
속속들이 비단옷과 진홍 대단치마 입고
옷고름에 노리개를 어찌 이루 다 이르랴
용문대단(龍紋大緞) 활옷 입고 홍선(紅扇)을  손에 쥐고
수모와 중매어미 좌우에 옹위하여
신랑을 맞을 적에 어찌 이리 거룩한고
초례교배(醮禮交拜) 마친 후에 동뢰연(同牢宴) 합환주로
백년기약 더욱 좋다
감은 눈을 잠깐 뜨고 신랑을 살펴보니
수망 치던 김도령이 날과 과연 배필이다
내 점이 영검하여 이처로 만났는가
하늘이 유의하여 내게로 보내신가
이처로 노닐다가 짓독에 바람 들어
인연을 못 일우고 개 소리에 놀라 깨니
침상일몽(寢上一夢)이라
심신이 황홀하여 섬거이 앉아보니
등불은 희미하고 월색(月色)은 만정(滿庭)한데
원근의 계명성(鷄鳴聲)은 새벽을 재촉하고
창밖에 개 소리는 단잠을 깨는구나
아까울사 이내 꿈을 다시 얻어보리
꿈을 상시 삼고 그 모양 상시 삼아
혼인이 되려무나
미친증이 대발(大發)하여 벌떡 일어 앉으면서
입은 치마 다시 찾고 신은 버선 또 찾으며
방춧돌을 옆에 끼고 짖는 개를 때릴 듯이
와당퉁탕 냅들 적에 업더지락 곱더지락
바람벽에 이마 박고 문지방에 코를 깨며
면경(面鏡) 석경(石鏡) 성적함(成赤函)을 낱낱이 다 깨치고
한숨 지며 하는 말이
아깝고 아까울사 이내 꿈 아까울사
눈에 암암 귀에 쟁쟁
그 모양 그 거동을 어찌 다시 하여보리
남이 알까 부끄리나 안 슬픈 일 하여보자
홍두깨에 자를 매어 갓 씌우고 옷 입히니
사람 모양 거의 같다 쓰다듬어 세워놓고
새 저고리 긴 치마를 호기있게 떨쳐 입고
머리위에 팔을 들어 제법(制法)으로 절을 하니
눈물이 종행(縱行)하여 입은 치마 다 적시고
한숨이 복발하여 곡성이 날 듯하다
마음을 강잉(强仍)하여 가만히 헤어보니
가련하고 불쌍하다 이런 모양 이 거동을
신령(神靈)은 알 것이니 지성이면 감천이라
부모들도 의논하고 동생들도 의논하여
김도령과 의혼(議婚)하니 첫마디에 되는구나
혼인 택일 가까우니 엉덩춤이 절로 난다
주먹을 불근 쥐고 종종걸음 보살피며
삽살개 귀에 대고 넌지시 이른 말이
나도 이제 시집간다 네가내 꿈을 깨던 날에
원수같이 보았더니 오늘이야 너를 보니
이별할 날 멀지 않고 밥 줄 사람 나뿐이랴
이처로 말한 후에 혼일(婚日)이 다다르니
신부의 칠보단장 꿈과 같이 거룩하고
신랑의 사모풍대 더구나 보기 좋다
전안초례 마친 후에 방친영(房親迎) 더욱 좋네
신랑의 동탕(動蕩)함과 신부의 아남함이
차등(差等)이 없었으니
천장한 배필인 줄 오늘이야 알겠구나
이렇듯이 쉬운 일을 어찌하여 지완(遲緩)턴고
신방에 금침 펴고 부부 서로 동침하니
원앙은 녹수에 놀고 비취는 연리지(連理枝)에 길들임 같으니
평생 소원 다 풀리고 온갓 시름 바히 없네
이전에 있던 새암 이제록 생각하니
도리어 춘몽 같고 내가 설마 그러하랴
이제는 기탄없다 먹은 귀 밝아지고
병신 팔을 능히 쓰니 아니 희한한가 
혼인한 지 십 삭 만에 옥동자를 순산하니
쌍태(雙胎)를 어이 알리 즐겁기 측량없네
개개이 영준(英俊)이오 문재(文才)가 비상하다
부부의 금슬 좋고 자손이 만당(滿堂)하며
가산(家産)이 부요(富饒)하고 공명(功名)이 이음차니
이 아니 무던한가
이 말이 가장 우습고 희한하기로 기록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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