雜記帳(잡기장)

이조판서 河演(하연)

華谷.千里香 2018. 3. 31. 15:55

 

조선 태종 때 전라감사와 이조판서를 지낸 河演(하연)은

생전에 인천 소래산에 자신의 묘터를 잡고 주변에 나무를 많이 심어 놓았다.

그 나무는 지금까지 잘 자라고 있는데 여기에는 전해오는 이야기가 있다.  


하연 대감이 세상을 떠난 지 몇 백 년이 지난 뒤의 일이다.

인천 근방에 살던 그의 후손이 너무 가난하여 무덤 주위에 심어 논

나무를 어느 소금장수에게 팔았다.

그런 일이 있은 후 인천부사로 내려오는 사람은

관하에 부임하자마자 요절하곤 하였다.

그래서 나라에서는 영특하고 담력이 센 사람을 뽑아 인천 부사로 내려 보냈다.

새로 부임한 부사는 동헌의 사방에다 불을 밝히고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자지 않고 기다렸다.

그런데 한밤중이 되자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朝服(조복)을 입고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부사는 이 노인이 생전에 높은 벼슬을 한 분임을 직감하고

당상으로 인도하여 앉게 하였다.

노인은 부사를 불러 가까이 앉게 하며 말하기를,

 “나는 예전에 벼슬을 하였던 하연이란 사람인데 부사한테 소청이 있어서 왔소.

전에도 왔지만 그 부사들은 나를 보고는 모두 놀라 죽고 말아서

소청을 말할 수가 없었오.

이제 담력있는 부사를 보니 내 소원을 이룰것 같구려.

인천 소래산에 나의 묘가 있는데,

그 부근에는 내가 심어 놓은 나무가 많아 거기서 노닐곤 한다오.

그런데 불초한 자손이 가난을 핑계로 그 나무들을 소금장수에게 팔아서,

소금장수가 조만간에 나무를 베러 올 것 같으니

감사가 그것을 막아 주면 고맙겠소.” 하는 것이었다.

부사는 일단 승락하고 다음 날 조사해 보니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다.

그래서 소금장수에게 나무를 베지 못하도록 조치하였다.

다음 날 밤 하대감의 영혼이 부사를 찾아와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갔는데,

말벗이 생기자 하대감의 영혼은 그 다음 날도 계속해서 부사를 찾아와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고자 하였다.

부사는 한편으로는 두렵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귀찮기도 하여,

 “하대감님, 도대체 신의 수명은 어느 정도 되기에

그렇게 오래도록 머물고 계십니까?”하고 물어보았다.

그러자 하대감의 영혼이 대답하기를,

 “사람이 죽으면 누구나 神壽(신수-신의 수명)가 남는 것은 아니지.

보통 사람들은 죽는 즉시 없어지고, 대인은 몇 백 년은 살게 되지.”라고 하였다.

이 말을 듣고 부사는 다시 물었다.

 “대감의 영혼은 몇 백년 지속할 수 있습니까?”

 “우리 같은 사람은 한 5백 년은 남지.”

 “그러면 저는 죽으면 얼마나 남겠습니까?”

 “자네는 영특한 일물이니 한 3백 년 정도는 남을 걸세.”

부사는 이 말을 듣고 나서 다시 물었다.

 “혹시 귀신이 꺼리는 물건은 없습니까?”

그러자 하대감은 복숭아를 꺼린다고 대답하였다.

그후 얼마가 지나 하대감이 다시 부사를 찾아 왔는데,

부사는 복숭아를 깎아서 대접하는 것이었다.

하대감은 이것을 보고는,

 “보통 귀신이야 복숭아를 무서워 하지만 나 같은 귀신은 상관없네.

그러고 보니 나는 정이 들어서 찾아오는데 자네는 내가 싫은 모양이구만.

그렇다면 걱정 말게나. 이제는 아니 오겠네.”하였다.

그 뒤로 하대감은 다시 오지 않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