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炎浮洲志(남염부주지)-金時習(김시습)
成化初(성화초) : 성화(成化) 초년에
慶州有朴生者(경주유박생자) : 경주에 박생이란 사람이 살고 있었다.
以儒業自勉(이유업자면) : 그는 유학에 뜻을 두고 언제나 자신을 격려하였다.
常補大學館(상보대학관) : 일찍부터 태학관(太學館) 에서 공부하였지만,
不得登一試(부득등일시) : 한번도 시험에 합격하지는 못하였다.
常怏怏有憾(상앙앙유감) : 그래서 언제나 불쾌한 감정을 품고 지냈다.
而意氣高邁(이의기고매) : 그는 뜻과 기상이 고매하여
見勢不屈(견세불굴) : 세력을 보고도 굽히지 않았으므로,
人以爲驕俠(인이위교협) : 남들은 그를 거만하다고 생각하였다.
然對人接話(연대인접화) : 그러나 남들과 만나거나 이야기할 때에는
淳愿慤厚(순원각후) : 온순하고 순박하였으므로,
一鄕稱之(일향칭지) : 마을 사람들이 모두 그를 칭찬하였다.
生嘗疑浮屠巫覡鬼神之說(생상의부도무격귀신지설) :
박생을 일찍부터 부도(浮圖; 불교).무격.귀신 등의 이야기에 대하여
猶豫未決(유예미결) : 의심을 품고 있었지만, 어떠한 결정을 내리지는 못하였다.
旣而質之中庸參之易辭(기이질지중용참지역사) :
그러다가『중용』과『주역』을 읽은 뒤부터는
自負不疑(자부불의) : 자기의 생각에 대하여 자신을 가지고
더 이상의 의심하지 않게 되었다.
而以淳厚(이이순후) : 그러나 그의 성품이 순박하고도 온후하였으므로
故與浮屠交(고여부도교) : 스님들과도 잘 사귀었는데,
如韓之顚柳之巽者(여한지전유지손자) :
한유와 태전의 사이나 유종원과 손상인의 사이처럼 가까운
不過二三人(불과이삼인) : 이들도 두세 사람 있었다.
浮屠亦以文士交(부도역이문사교) : 스님들도 또한 그를 문사로서 사귀었다.
如遠之宗雷(여원지종뢰) : 혜원이 종병.뇌차종과 사귀었던 것처럼,
遁之王謝(둔지왕사) : 지둔이 왕탄지.사안과 사귀었던 것처럼
爲莫逆友(위막역우) : 막역한 벗이 많았다.
一日(일일) : 박생이 어느 날
因浮屠(인부도) : 한 스님에게
問天堂地獄之說(문천당지옥지설) : 천당과 지옥의 설에 대하여 묻다가,
復疑云(부의운) : 다시 의심이 생겨서 말하였다.
天地一陰陽耳(천지일음양이) :
"하늘과 땅에는 하나의 음(陰)과 양(陽)이 있을 뿐인데,
那有天地之外(나유천지지외) : 어찌 이 하늘과 땅 밖에
更有天地(갱유천지) : 또 다른 하늘과 땅이 있겠습니까?
必詖辭也(필피사야) : 그것은 반드시 잘못된 이야기입니다."
問之浮屠(문지부도) : 그가 다시 스님에게 물었더니,
浮屠亦不能決答(부도역불능결답) : 스님도 또한 결정적으로 대답하지는 못하였다.
而以罪福響應之說答之(이이죄복향응지설답지) :
'죄와 복은 지은 데 따라서 응보가 있다.' 는 설로써 대답하였다.
生亦不能心服也(생역불능심복야) : 박생은 역시 마음속으로 받아들이지 못하였다.
常著一理論(상저일리론) : 박생은 일찍이「일리론(一理論)」이란 논문을 지어서
以自警(이자경) : 자신을 깨우쳤는데,
蓋不爲他岐所惑(개불위타기소혹) :
이는 이단(불교)의 유혹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였다.
其略曰(기략왈) : 그 대략은 이렇다.
常聞天下之理(상문천하지리) : 내가 일찍이 옛 사람의 말을 들으니,
一而已矣(일이이의) : '천하의 이치는 한 가지가 있을 뿐이다'라고 하였다.
一者何(일자하) : '한 가지'란 무엇인가?
無二致也(무이치야) : ‘두 가지가 아닌 것’이다
理者何(이자하) : '이치'란 무엇인가?
性而已矣(성이이의) : '천성'을 말한다.
性者何(성자하) : '천성'이란 무엇인가?
天之所命也(천지소명야) : '하늘로부터 주어진 것'이다.
天以陰陽五行(천이음양오행) : 하늘이 음양(陰陽)과 오행(五行)으로써
化生萬物(화생만물) : 만물을 만들 때에
氣以成形(기이성형) : 기(氣)로써 형체를 이루었는데,
理亦賦焉(이역부언) : 이도 또한 타고나게 되었다.
所謂理者(소위이자) : 이치라고 하는 것은
於日用事物上(어일용사물상) : 일용 사물에 있어서
各有條理(각유조리) : 각각 조리를 가지는 것이다.
語父子則極其親(어부자칙극기친) :
예를 들면,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는 사랑을 다하여야 하고,
語君臣則極其義(어군신칙극기의) : 임금과 신하사이에는 의리를 다하여야 하며,
以至夫婦長幼(이지부부장유) : 남편과 아내 . 어른과 아이 사이에도
莫不各有當行之路(막불각유당행지로) :
각기 당연히 행하여야 할 길이 있음을 말하였다.
是則所謂道(시칙소위도) : 이것이 바로 '도(道)'이다.
而理之具於吾心者也(이리지구어오심자야) :
우리 마음속에 이 이치가 갖추어져 있는 것이다.
循其理(순기리) : 이 이치를 따르면
則無適而不安(칙무적이불안) : 어디를 가더라도 불안하지 않지만,
逆其理而拂性(역기리이불성) : 이 이치를 거슬러서 천성을 어긴다면
則菑逮(칙치체) : 재앙이 미치게 될 것이다.
窮理盡性(궁리진성) : '궁리진성(窮理盡性)'은
究此者也(구차자야) : 이 이치를 연구하는 일이고,
格物致知(격물치지) : '격물치지(格物致知)'도
格此者也(격차자야) : 이 이치를 연구하는 일이다.
蓋人之生(개인지생) : 사람은 날 때부터
莫不有是心(막불유시심) : 모두 이 마음을 가졌으며,
亦莫不具是性(역막불구시성) : 또한 이 천성을 갖추었다.
而天下之物(이천하지물) : 천하의 사물에도
亦莫不有是理(역막불유시리) : 또한 이 이치가 모두 있다.
以心之虛靈(이심지허령) : 허령(虛靈)한 마음으로써
循性之固然(순성지고연) : 천성의 자연을 따라
卽物而窮理(즉물이궁리) : 만물에 나아가 이치를 연구하고,
因事而推源(인사이추원) : 일마다 근원을 추구하여
以求至乎其極(이구지호기극) : 그 극치에 이르게 된다면,
則天下之理(칙천하지리) : 천하의 이치가
無不著現明顯(무불저현명현) : 모두 나타나 분명해질 것이며,
而理之至極者(이리지지극자) : 이치의 지극함이
莫不森於方寸之內矣(막불삼어방촌지내의) : 마음속에 모두 벌여질 것이다.
以是而推之(이시이추지) : 이러한 방법으로 추구하여 본다면
天下國家(천하국가) : 천하와 국가에서
無不包括(무불포괄) : 일어나는 일들이 모두 여기에 포괄되고
無不該合(무불해합) : 해당될 것이니,
參諸天地而不悖(참제천지이불패) :
천지 사이에 참여하더라도 어긋남이 없을 것이다.
質諸鬼神而不惑(질제귀신이불혹) :
또 귀신에게 질문하더라도 미혹되지 않을 것이며,
歷之古今而不墜(역지고금이불추) : 오랜 세월을 지나더라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儒者之事(유자지사) : 유학자가 할 일은
止於此而已矣(지어차이이의) : 오직 이에서 그칠 뿐이다.
天下豈有二理哉(천하기유이리재) : 천하에 어찌 두 가지의 이치가 있겠는가?
彼異端之說(피이단지설) : 저 이단의 말을
吾不足信也(오불족신야) : 나는 믿지 않는다.
一日(일일) : 하루는
於所居室中(어소거실중) : 박생이 자기 거실에서
夜挑燈讀易(야도등독역) : 밤에 등불을 돋우고 『주역』을 읽다가
支枕假寐(지침가매) : 베개를 괴고 언뜻 잠이 들었는데,
忽到一國(홀도일국) : 홀연히 한 나라에 이르고 보니
乃洋海中一島嶼也(내양해중일도서야) : 바로 바다 속의 한 섬이었다.
其地無草木沙礫(기지무초목사력) :
그 땅에는 본래 풀이나 나무가 없었고, 모래나 자갈도 없었다.
所履非銅則鐵也(소리비동칙철야) :
발에 밟히는 것이라고는 모두 구리가 아니면 쇠였다.
晝則烈焰亘天(주칙열염긍천) : 낮에는 사나운 불길이 하늘까지 뻗쳐
大地融冶(대지융야) : 땅덩이가 녹아 내리는 듯하였고,
夜則凄風自西(야칙처풍자서) : 밤에는 싸늘한 바람이 서쪽에서 불어와
砭人肌骨(폄인기골) : 사람의 살과 뼈를 에는 듯하였다.
吒波不勝(타파불승) : 타파를 견딜 수가 없었다.
又有鐵崖如城(우유철애여성) : 성같은 쇠 벼랑이
緣于海濱(연우해빈) : 바닷가를 둘러싸고 있었는데,
只有一鐵門(지유일철문) : 굳게 잠긴 성문 하나가 덩그렇게 서 있었다.
宏壯(굉장) : 광장하여
關鍵甚固(관건심고) : 빗장과 자물쇠가 심히 단단했다
守門者(수문자) : 수문장은
喙牙獰惡(훼아영악) : 물어뜯을 것 같은 영악한 자세로
執戈鎚以防外物(집과추이방외물) :
창과 쇠몽둥이를 쥐고 외물(外物)을 막고 서 있었다.
其中居民(기중거민) : 그 가운데 거주하는 백성들은
以鐵爲室(이철위실) : 쇠로 지은 집에 살고 있었는데,
晝則焦爛(주칙초란) : 낮에는 피부가 불에 데어서 문드러지고
夜則凍烈(야칙동렬) : 밤에는 얼어 터졌다.
唯朝暮蠢蠢(유조모준준) : 오직 아침과 저녁에만 사람들이 꿈틀거리며
似有笑語之狀(사유소어지상) : 웃고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而亦不甚苦也(이역불심고야) : 별로 괴로워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生驚愕逡巡(생경악준순) : 박생이 깜짝 놀라서 머뭇거리자,
守門者喚之(수문자환지) : 수문장이 그를 불렀다.
生遑遽不能違命(생황거불능위명) : 박생은 당황하였지만 명을 어길 수 없어,
踧踖而進(축적이진) : 공손하게 다가갔다.
守門者(수문자) : 수문장이
竪戈而問曰(수과이문왈) : 창을 세우고 박생에게 물었다.
子何如人也(자하여인야) : "그대는 어떤 사람이오?"
生慄且答曰(생율차답왈) : 박생이 두려워 떨면서 대답하였다.
某國某土某(모국모토모) : "저는 아무 나라에 사는 아무개인데,
一介迂儒(일개우유) : 세상 물정을 모르는 선비입니다.
干冒靈官(간모영관) : 감히 영관(靈官)을 모독하였으니
罪當寬宥(죄당관유) : 죄를 받는 것이 마땅하겠지만,
法當矜恕(법당긍서) : 너그럽게 용서하여 주십시오."
拜伏再三(배복재삼) : 박생이 엎드려 두세 번 절하며
且謝搪揬(차사당돌) : 당돌하게 찾아온 것을 사죄하자,
守門者曰(수문자왈) : 수문장이 말하였다.
爲儒者(위유자) : "선비는
當逢威不屈(당봉위불굴) : 위협을 당하여도 굽히지 않는다'고 하던데,
何磬折之如是(하경절지여시) : 그대는 어찌 이처럼 지나치게 굽히시오?
吾儕欲見識理君子久矣(오제욕견식이군자구의) :
우리들이 이치를 잘 아는 군자를 만나려 한 지가 오래 되었소.
我王亦欲見如君者(아왕역욕견여군자) :
우리 임금께서도 그대와 같은 군자를 한번 만나서
以一語傳白于東方(이일어전백우동방) :
동방 사람들에게 한 말씀을 전하려 하신다오.
少坐(소좌) : 잠깐만 앉아 계시면,
吾將告子于王(오장고자우왕) : 곧 우리 임금께 아뢰겠소."
言訖(언흘) : 말을 마치자
趨蹌而入(추창이입) : 수문장은 빠른 걸음으로 성안에 들어갔다.
俄然出語曰(아연출어왈) : 얼마 뒤에 그가 나와서 말하였다.
王欲延子於便殿(왕욕연자어편전) :
"임금께서 그대를 편전(便殿)에서 만나시겠다니,
子當以訏言對(자당이우언대) : 아무쪼록 정직한 말로 대답하시오.
不可以威厲諱(불가이위려휘) : 위엄이 두렵다고 숨기면 안 되오.
使我國人民(사아국인민) : 우리 나라 백성들이
得聞大道之要(득문대도지요) : 올바른 길(大道)의 요지를 알게 하여 주시오."
有黑衣白衣二童(유흑의백의이동) : 말이 끝나자 검은 옷과 흰옷을 입은 두 동자가
手把文卷而出(수파문권이출) : 손에 문서를 가지고 나왔다.
一黑質靑字(일흑질청자) : 하나는 검은 문서에 푸른 글자로 썼고,
一白質朱字(일백질주자) : 다른 하나는 흰 문서에 붉은 글자로 쓴 것이었다.
張于生之左右以示之(장우생지좌우이시지) :
동자가 그 문서를 박생의 좌우에서 펴 보기에 들여다보았더니,
生見朱字有名姓(생견주자유명성) : 박생의 이름이 붉은 글자로 씌어져 있었다.
曰現住某國朴某(왈현주모국박모) : "현재 아무 나라 박아무개는
今生無罪(금생무죄) : 이승에서 지은 죄가 없으므로,
當不爲此國民(당불위차국민) : 이 나라의 백성이 될 수 없다."
生問曰(생문왈) : 박생이 이 글을 보고 동자에게 물었다.
示不肖以文卷(시불초이문권) : "나에게 이 문서를 보이는 것은
何也(하야) : 무슨 까닭이오?"
童曰(동왈) : 동자가 말하였다.
黑質者(흑질자) : "검은 종이의 것은
惡簿也(악부야) : 악인의 명부이고,
白質者(백질자) : 흰 종이의 것은
善簿也(선부야) : 선인의 명부입니다.
在善簿者(재선부자) : 선인의 명부에 실린 사람은
王當以聘士禮迎之(왕당이빙사례영지) :
임금께서 선비를 초빙하는 예로써 맞이하십니다.
在惡簿者(재악부자) : 인의 명부에 실린 사람도
雖不加罪(수불가죄) : 악처벌하지는 않지만,
以民隸例勑之(이민예예래지) : 노예로 대우하십니다.
王若見生(왕약견생) : 임금께서 만약 선비를 보시면
禮當詳悉(예당상실) : 예를 극진히 하실 것입니다."
言訖(언흘) : 동자가 말을 마치더니,
持簿而入(지부이입) : 그 명부를 가지고 들어갔다.
須臾飆輪寶車(수유표륜보차) : 얼마 뒤에 바람을 타고 수레가 달려왔는데,
上施蓮座(상시연좌) : 그 위에는 연좌(蓮座)가 설치되어 있었다.
嬌童彩女(교동채녀) : 예쁜 동자와 동녀가
執拂擎盖(집불경개) : 불자(拂子)를 잡고 일산(日傘)을 들었으며,
武隸邏卒(무예나졸) : 무사와 나졸들이
揮戈喝道(휘과갈도) : 창을 휘두르며 '물럿거라'고 외쳤다.
生擧首望之(생거수망지) : 박생이 머리를 들고 멀리 바라보니
前有鐵城三重(전유철성삼중) : 그 앞에 세 겹으로 된 철성(鐵城)이 있고,
宮闕嶔峩(궁궐금아) : 높다란 궁궐이
在金山之下(재금산지하) : 금으로 된 산아래 있었는데,
火炎漲天(화염창천) : 뜨거운 불꽃이 하늘까지 닿도록
融融勃勃(융융발발) : 이글거리며 타오르고 있었다.
顧視道傍人物(고시도방인물) : 길가에 다니는 사람들을 돌아보았더니,
於火燄中(어화염중) : 불꽃 속에서
履洋銅融鐵如蹋濘泥(리양동융철여답녕니) :
녹아 내린 구리와 쇠를 마치 진흙이라도 밟듯이 밟으면서 다니고 있었다.
生之前路可數十步許(생지전로가수십보허) :
그러나 박생의 앞에 뻗은 길은 수십 걸음쯤 되어 보였는데,
如砥而無流金烈火(여지이무유금렬화) :
숫돌같이 평탄하였으며 흘러내리는 쇳물이나 뜨거운 불도 없었다.
蓋神力所變爾(개신력소변이) : 아마도 신통한 힘으로 이루어진 것 같았다.
至王城(지왕성) : 왕성(王城)에 이르니
四門豁開(사문활개) : 사방의 문이 활짝 열려 있었는데,
池臺樓觀(지대누관) : 연못가에 있는 누각 모습이
一如人間(일여인간) : 하나같이 인간 세상의 것과 같았다.
有二美姝(유이미주) : 아름다운 두 여인이
出拜扶携而入(출배부휴이입) : 마중 나와서 절하더니, 모시고 들어갔다.
王戴通天之冠(왕대통천지관) : 임금은 머리에 통천관(通天冠)을 쓰고
束文玉之帶(속문옥지대) : 허리에는 문옥대(文玉帶)를 띠였으며,
秉珪下階而迎(병규하계이영) :
손에는 규(珪)를 잡고 뜰 아래까지 내려와서 맞이하였다.
生俯伏在地(생부복재지) : 박생이 땅에 엎드려
不能仰視(불능앙시) : 쳐다보지도 못하자,
王曰(왕왈) : 임금이 말하였다.
土地殊異(토지수이) : "서로 사는 곳이 달라서
不相統攝(불상통섭) : 통제할 권리도 없을 뿐 아니라,
而識理君子(이식이군자) : 이치에 통달한 선비를
豈可以威勢屈其躬也(기가이위세굴기궁야) : 어찌 위세로 굽히게 할 수가 있겠소?"
挽袖而登殿上(만수이등전상) : 임금이 박생의 소매를 잡고 전각 위로 올라와
別施一床(별시일상) : 특별히 한 자리를 마련해 주었는데,
卽玉欄金床也(즉옥난금상야) : 옥난간에 놓인 금으로 만든 자리였다.
坐定(좌정) : 자리를 잡자,
王呼侍者進茶(왕호시자진다) : 임금이 시자를 불러 차를 올리게 하였다.
生側目視之(생측목시지) : 박생이 곁눈질하여 보았더니,
茶則融銅(다칙융동) : 차는 구리를 녹인 물이었고
果則鐵丸也(과칙철환야) : 과일은 쇠로 만든 알맹이였다.
生且驚且懼(생차경차구) : 박생이 놀랍고도 두려웠지만
而不能避(이불능피) : 피할 수가 없었으므로,
以觀其所爲(이관기소위) : 그들이 어떻게 하나 보고만 있었다.
進於前(진어전) : 시자가 다과를 앞에 올려 놓자,
則香茗佳果(칙향명가과) : 향그런 차와 맛있는 과일의
馨香芬郁(형향분욱) : 아름다운 향내가
薰于一殿(훈우일전) : 온 전각에 퍼졌다.
茶罷(다파) : 차를 다 마시자
王語生曰(왕어생왈) : 임금이 박생에게 말하였다.
士不識此地乎(사불식차지호) : "선비께선 이 땅이 어디인지 모르시겠지요.
所謂炎浮洲也(소위염부주야) : 속세에서 염부주(炎浮洲)라고 하는 곳입니다.
宮之北山(궁지북산) : 왕궁의 북쪽 산이
卽沃焦山也(즉옥초산야) : 바로 옥초산(沃焦山) 입니다.
此洲在天之南(차주재천지남) : 이 섬은 하늘과 땅의 남쪽에 있으므로,
故曰南炎浮洲(고왈남염부주) : 남염부주라고 부릅니다.
炎浮者(염부자) : '염부'라는 말은
炎火赫赫(염화혁혁) : 불꽃이 활활 타서
常浮大虛(상부대허) : 언제나 공중에 떠 있기 때문에
故稱之云耳(고칭지운이) : 불려진 이름이지요.
我名燄摩(아명염마) : 내 이름은 염마입니다.
言爲燄所摩也(언위염소마야) :
불꽃이 내 몸을 휘감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부르는 것이지요.
爲此土君師(위차토군사) : 내가 이 땅의 임금이 된 지가
已萬餘載矣(이만여재의) : 벌써 만여 년이나 되었습니다.
壽久而靈(수구이령) : 너무 오래 살다 보니 영통해져,
心之所之(심지소지) : 마음가는 대로 하여도
無不神通(무불신통) : 신통하지 않음이 없고,
志之所欲(지지소욕) : 하고 싶은 대로하여도
無不適意(무불적의) : 뜻대로 되지 않는 적시 없었습니다.
蒼頡作字(창힐작자) : 창힐이 글자를 만들 때에는
送吾民以哭之(송오민이곡지) : 우리 백성을 보내어 울어주었고,
瞿曇成佛(구담성불) : 석가가 부처가 될 때에는
遣吾徒以護之(견오도이호지) : 우리 무리를 보내어 지켜 주었소,
至於三五周孔(지어삼오주공) : 그러나 삼황(三皇) . 오제(五帝)와 주공.공자는
則以道自衛(칙이도자위) : 자기의 도를 지켰으므로,
吾不能側足於其間也(오불능측족어기간야) : 나는 그 사이에 바로 설 수가 없었소."
生問曰(생문왈) : 박생이 물었다.
周孔瞿曇(주공구담) : "주공과 공자와 석가는
何如人也(하여인야) : 어떤 사람들입니까?"
王曰(왕왈) : 임금이 말하였다.
周孔(주공) : "주공과 공자는
中華文物中之聖也(중화문물중지성야) :
중화(中華) 문물(文物) 가운데서 탄생한 성인이요,
瞿曇(구담) : 석가는
西域姦兇中之聖也(서역간흉중지성야) :
서역(西域)의 간흉한 민족 가운데서 탄생한 성인입니다.
文物雖明(문물수명) : 문물이 비록 개명하였다 하더라도
人性駁粹(인성박수) : 성품이 박잡(駁雜)한 사람도 있고 순수한 사람도 있으므로,
周孔率之(주공솔지) : 주공과 공자가 이들을 통솔하였습니다.
姦兇雖昧(간흉수매) : 간흉한 민족이 비록 몽매하다고 하더라도
氣有利鈍(기유이둔) : 기질이 날카로운 사람도 있고 노둔한 사람도 있으므로,
瞿曇警之(구담경지) : 석가가 이들을 일깨워 주었습니다.
周孔之敎(주공지교) : 주공과 공자의 가르침은
以正去邪(이정거사) : 정도(正道)로써 사도(邪道)를 물리치는 일이었고,
瞿曇之法(구담지법) : 석가의 법은
設邪去邪(설사거사) : 사도로써 사도를 물리치는 일이었습니다.
以正去邪(이정거사) : 그러므로 정도로써 사도를 물리친
故其言正直(고기언정직) : 주공과 공자의 말씀은 정직하였고,
以邪去邪(이사거사) : 사도로써 사도를 물리친
故其言荒誕(고기언황탄) : 석가의 말씀은 황탄하였습니다.
正直故君子易從(정직고군자이종) :
주공과 공자의 말씀은 정직하였으므로 군자들이 따르기가 쉬웠고,
荒誕故小人易信(황탄고소인이신) :
석가의 말씀은 황탄하였으므로 소인들이 믿기가 쉬웠던 것입니다.
其極致(기극치) : 그러나 그 지극한 경지에 이르면
則皆使君子小人(칙개사군자소인) : 모두 군자와 소인들로 하여금
終歸於正理(종귀어정리) : 마침내 바른 도리로 돌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未嘗惑世誣民(미상혹세무민) : 세상을 의혹시키고 백성을 속여서
以異道誤之也(이이도오지야) : 이도로써 그릇되게 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生又問曰(생우문왈) : 박생이 또 물었다.
鬼神之說(귀신지설) : "귀신이란
乃何(내하) : 어떤 것입니까?"
王曰(왕왈) : 임금이 말하였다.
鬼者(귀자) : " '귀(鬼)'는
陰之靈(음지영) : 음(陰)의 영이고,
神者(신자) : '신(神)'은
陽之靈(양지영) : 양(陽)의 영입니다.
蓋造化之迹(개조화지적) : 귀신은 대개 조화(造化)의 자취이고,
而二氣之良能也(이이기지량능야) : 이기(理氣)의 양능(良能)입니다.
生則曰人物(생칙왈인물) : 살아있을 때에는 '인물'이라 하고
死則曰鬼神(사칙왈귀신) : 죽은 뒤에는 '귀신'이라 하지만,
而其理則未嘗異也(이기리칙미상이야) : 그 이치는 다르지 않습니다."
生曰(생왈) : 박생이 말하였다.
世有祭祀鬼神之禮(세유제사귀신지예) :
"속세에서는 귀신에게 제사지내는 예법이 있는데,
且祭祀之鬼神(차제사지귀신) : 제사를 받는 귀신과
與造化之鬼神(여조화지귀신) : 조화의 귀신은
異乎(이호) : 다릅니까?"
曰不異也(왈불이야) : "다르지 않습니다.
士豈不見乎(사기불견호) : 선비는 어찌 그것도 알지 못합니까?
先儒云(선유운) : 옛 선비가 이르기를,
鬼神無形無聲(귀신무형무성) : '귀신은 형체도 없고 소리도 없다'고 하였습니다.
然物之終始(연물지종시) : 그러나 물질이 끝나고 시작되는[시종(始終)] 것은
無非陰陽合散之所爲(무비음양합산지소위) :
음양이 어울리고 흩어지는 데[합산(合散)] 따르는 것이고,
且祭天地(차제천지) : 하늘과 땅에 제사지내는 것은
所以謹陰陽之造化也(소이근음양지조화야) : 음양의 조화(造化)를 존경하는 것이며,
祀山川(사산천) : 산천에 제사지내는 것은
所以報氣化之升降也(소이보기화지승강야) :
기화(氣化)가 오르내리는 것을 보답하려는 것입니다.
享祖考(향조고) : 조상께 제사지내는 것은
所以報本(소이보본) : 근본에 보답하기 위한 것이고,
祀六神(사육신) : 육신(六神)에게 제사지내는 것은
所以免禍(소이면화) : 재앙을 면하기 위해서입니다.
皆使人致其敬也(개사인치기경야) : 이러한 제사들은 모두 사람들이
공경하는 마음을 가지게 하기 위해서 지냅니다.
非有形質以妄加禍福於人間(비유형질이망가화복어인간) :
이 귀신들이 형체가 있어서 인간에게 화와 복을 함부로 주는 것은 아닙니다.
特人焄蒿悽愴(특인훈호처창) : 그렇지만 사람들은 향불을 사르고 슬퍼하면서
洋洋如在耳(양양여재이) : 마치 귀신이 옆에 있는 것처럼 지냅니다.
孔子所謂敬鬼神而遠之(공자소위경귀신이원지) :
공자가 '귀신은 공경하면서도 멀리하라'고 하신 말씀은
正謂此也(정위차야) : 바로 이러한 태도를 일러주신 것입니다."
生曰(생왈) : 박생이 말하였다.
世有厲氣妖魅(세유려기요매) : "인간 세상에 여기와 요매(妖魅)들이 나타나서
害人惑物(해인혹물) : 사람을 해치고 미혹시키는 일이 있는데,
此亦當言鬼神乎(차역당언귀신호) : 이것도 또한 귀신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王曰(왕왈) : 임금이 말하였다.
鬼者(귀자) : "귀(鬼)는
屈也(굴야) : 굽힌다[굴(屈)]는 뜻이고,
神者(신자) : 신(神)은
伸也(신야) : 편다[신(伸)]는 뜻입니다.
屈而伸者(굴이신자) : 굽히되 펼 줄 아는 것은
造化之神也(조화지신야) : 조화의 신이며,
屈而不伸者(굴이불신자) : 굽히되 펼 줄 모르는 것은
乃鬱結之妖也(내울결지요야) : 울결(鬱結)된 요매(妖魅)들입니다.
合造化(합조화) : 조화의 신은 조화와 어울렸으므로
故與陰陽終始而無跡(고여음양종시이무적) :
처음부터 끝까지 음양과 더불어 하며 자취가 없습니다.
滯鬱結(체울결) : 그러나 요매들은 울결되었으므로
故混人物寃懟而有形(고혼인물원대이유형) :
인물과 혼동되고 사람을 원망하며 형체를 가지고 있습니다.
山之妖曰魈(산지요왈소) : 산에 있는 요물을 초라 하고,
水之怪曰魊(수지괴왈역) : 물에 있는 요물을 역이라 하며,
水石之怪曰龍罔象(수석지괴왈용망상) :
수석에 있는 요괴는 용망상(龍罔象)이라 하고,
木石之怪曰夔魍魎(목석지괴왈기망량) : 목석에 있는 요괴는 기망량이라 합니다.
害物曰厲(해물왈려) : 만물을 해치면 여라 하고
惱物曰魔(뇌물왈마) : 만물을 괴롭히면 마(魔)라 하며,
依物曰妖(의물왈요) : 만물에 붙어 있으면 요(妖)라 하고
惑物曰魅(혹물왈매) : 만물을 미혹시키면 매(魅)라 합니다.
皆鬼也(개귀야) : 이들이 모두 귀(鬼)들입니다.
陰陽不測之謂神(음양불측지위신) : 음양 불측(不測)을 신(神)이라고 하니,
卽神也(즉신야) : 이게 바로 신입니다.
神者(신자) : 신이란
妙用之謂也(묘용지위야) : 묘용(妙用)을 말하는 것이고
鬼者(귀자) : 귀(鬼)란
歸根之謂也(귀근지위야) : 근본으로 돌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天人一理(천인일리) : 하늘과 사람은 한 이치이고,
顯微無間(현미무간) : 드러난 것과 숨겨진 것에 간격이 없으니,
歸根曰靜(귀근왈정) : 근본으로 돌아가는 것을 정(靜)이라 하고,
復命曰常(복명왈상) : 천명을 회복하는 것을 상(常)이라 합니다.
終始造化(종시조화) : 처음부터 끝까지 조화와 함께 하면서도
而有不可知其造化之跡(이유불가지기조화지적) :
그 조화의 자취를 알 수 없는 것이 있느니,
是卽所謂道也(시즉소위도야) : 이것을 바로 도(道)라고 합니다.
故曰(고왈) : 그래서
鬼神之德(귀신지덕) : 『중용』에서도 '귀신의 덕이
其盛矣乎(기성의호) : 크다'고 한 것입니다."
生又問曰(생우문왈) : 박생이 또 물었다.
僕嘗聞於爲佛者之徒(복상문어위불자지도) : "제가 일찍이 불자들에게서 '
有曰天上有天堂快樂處(유왈천상유천당쾌락처) :
하늘 위에는 천당이라는 쾌락한 곳이 있고,
地下有地獄苦楚處(지하유지옥고초처) :
땅 아래에는 지옥이라는 고통스러운 곳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列冥府十王(렬명부십왕) : 그리고 '명부(冥府)에 십왕(十王)을 배치하여
鞠十八獄囚(국십팔옥수) : 십팔옥(十八獄)의 죄인들을 다스린다'고 들었습니다.
有諸(유제) : 정말 그렇습니까?
且人死七日之後(차인사칠일지후) : 또 '사람이 죽은지 칠 일 뒤에
供佛設齋以薦其魂(공불설재이천기혼) :
부처님께 공양드리고 재를 베풀어 그 영혼을 추천하고,
祀王燒錢以贖其罪(사왕소전이속기죄) :
대왕께 정성 드리며 지전(紙錢)을 사르면 지은 죄가 벗겨진다'고합니다.
姦暴之人(간포지인) : 간사하고 포악한 사람들도
王可寬宥否(왕가관유부) : 임금께서는 너그럽게 용서하시겠습니까?"
王驚愕曰(왕경악왈) : 임금이 깜짝 놀라면서 말하였다.
是非吾所聞(시비오소문) : "나는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없습니다.
古人曰(고인왈) : 옛 사람이 말하기를,
一陰一陽之謂道(일음일양지위도) :
'한 번 음(陰)이 되고 한번 양(陽)이 되는 것을 도(道)라고 한다.
一闢一闔之謂變(일벽일합지위변) :
한번 열리고 한번 닫히는 것을 변(變)이라고 한다.
生生之謂易(생생지위역) : 낳고 또 낳음[생생(生生)을 역(易)이라 하고,
無妄之謂誠(무망지위성) : 망령됨이 없음을 성(性)이라고 한다' 하였습니다.
夫如是(부여시) : 사리가 이와 같은데
則豈有乾坤之外(칙기유건곤지외) : 어찌 건곤(乾坤) 밖에
復有乾坤(부유건곤) : 다시금 건곤(乾坤)이 있으며,
天地之外(천지지외) : 천지밖에
更有天地乎(갱유천지호) : 다시금 천지가 있겠습니까?
如王者(여왕자) : 임금이라 함은
萬民所歸之名也(만민소귀지명야) : 만백성이 추대한 자를 말합니다.
三代以上(삼대이상) : 삼대(三代) 이전에는
億兆之主(억조지주) : 모든 백성의 군주를
皆曰王(개왈왕) : 다 임금이라 불렀고,
而無稱異名(이무칭이명) : 다른 이름으로는 부르지 않았습니다.
如夫子修春秋(여부자수춘추) : 공자께서『춘추』를 엮으실 때에
立百王不易之大法(입백왕불역지대법) : 백세에 바꿀 수 없는 커다란 법을 세워,
尊周室曰天王(존주실왈천왕) :
주(周) 나라 왕실을 높여 천왕(天王)이라 하였습니다.
則王者之名(칙왕자지명) : 그러니 임금이라는 이름보다
不可加也(불가가야) : 더 높일 수는 없습니다.
至秦滅六國一四海(지진멸육국일사해) :
그런데도 진(秦)나라 임금이 여섯 나라를 멸망시키고 천하를 통일한 뒤에,
自以爲德兼三皇(자이위덕겸삼황) : '나의 덕은 삼황(三皇)을 겸하고
功高五帝(공고오제) : 공훈은 오제(五帝)보다도 높다'고 하여,
乃改王號曰皇帝(내개왕호왈황제) :
임금이라는 칭호를 고쳐 황제(皇帝)라고 하였습니다.
當是時(당시시) : 당시에도
僭竊稱之者頗多(참절칭지자파다) :
참람(僭濫)하게 임금이라고 일컬은 자들이 아주 많았으니,
如魏梁荊楚之君(여위양형초지군) : 위(魏)나라와 초(楚)나라 군주가
是已(시이) : 그러하였습니다.
自是以後(자시이후) : 그런 뒤부터
王者之名分紛如也(왕자지명분분여야) : 임금이라는 명분이 어지러워져서,
文武成康之尊號(문무성강지존호) : 문왕 . 무왕 . 성왕 . 강왕의 존호(尊號)도
已墜地矣(이추지의) : 땅에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且流俗無知(차류속무지) : 게다가 인간세상의 사람들은 아는 게 없어서
以人情相濫(이인정상람) : 인정으로 서로 외람된 짓을 하니,
不足道(부족도) : 이런 것들은 말할 게 못 됩니다.
至於神道則尙嚴(지어신도칙상엄) : 그러나 신의 세계에서는 존엄함을 숭상하니,
安有一域之內(안유일역지내) : 어찌 한 지역 안에
王者如是其多哉(왕자여시기다재) : 임금이 그와 같이 많겠습니까?
士豈不聞天無二日國無二王乎(사기불문천무이일국무이왕호) : 선비께선
'하늘에는 두 해가 없고 나라에는 두 임금이 없다'는 말을 듣지 못하였습니까?
其語不足信也(기어불족신야) : 그러니 그런 말은 믿을 게 못 됩니다.
至於設齋薦魂(지어설재천혼) : 그러므로 재(齋)를 베풀어 영혼을 추천하고
祀王燒錢(사왕소전) : 대왕에게 제사지낸 뒤에 지전(紙錢)을 사르는 짓을
吾不覺其所爲也(오불각기소위야) : 왜 하는지, 나는 그 까닭을 알지 못하겠습니다.
士試詳其世俗之矯妄(사시상기세속지교망) :
선비께서 인간 세상의 거짓된 일들을 상세히 이야기하여 주십시오."
生退席敷袵而陳曰(생퇴석부임이진왈) :
박생이 자리에서 물러나 옷자락을 여미고 말하였다.
世俗當父母死亡七七之日(세속당부모사망칠칠지일) :
"인간세상에서는 어버이가 돌아가신 지 사십구 일이 되면
若尊若卑(약존약비) : 지위가 높든지 낮든지 가리지 않고
不顧喪葬之禮(불고상장지예) : 상장(喪葬)의 예를 돌보지 않으며,
專以追薦爲務(전이추천위무) : 오로지 절에 가서 추천하는 것만 일삼습니다.
富者(부자) : 부자는
糜費過度(미비과도) : 지나치게 많은 돈을 쓰면서
炫燿人聽(현요인청) : 남이 듣고 보는 데에서 자랑하고,
貧者(빈자) : 가난한 사람도
至於賣田貿宅(지어매전무택) : 논밭과 집을 팔고
貸錢賖穀(대전사곡) : 돈과 곡식을 빌려서
鏤紙爲旛(루지위번) : 종이를 아로새겨 깃발을 만들고
剪綵爲花(전채위화) : 비단을 오려 꽃을 만들며,
招衆Ꝛ爲福田(초중범위복전) : 여러 스님들을 불러다 복전(福田)을 닦고
立瓌像爲導師(입괴상위도사) : 불상을 세우며 도사(導師)로 삼아
唱唄諷誦(창패풍송) : 범패(梵唄)를 합니다.
鳥鳴鼠喞(조명서즐) : 그렇지만 새가 울고 쥐가 찍찍대는 것 같아서
曾無意謂(증무의위) :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爲喪者(위상자) : 상주(喪主)는
携妻率兒(휴처솔아) : 아내와 자식들을 거느리고
援類呼朋(원류호붕) : 친척과 벗들까지 불러들이므로
男女混雜(남녀혼잡) : 남녀가 뒤섞여서
矢溺狼籍(시익랑적) : 똥오줌이 널려지게 되니,
使淨土變爲穢溷(사정토변위예혼) : 정토(淨土)는 더러운 뒷간으로 바뀌고,
寂場變爲鬧市(적장변위료시) :
적량(寂場)은 시끄러운 시장바닥으로 바뀌게 됩니다.
而又招所謂十王者(이우초소위십왕자) : 또 이르나 십왕상(十王像)을 모셔 놓고
備饌以祭之(비찬이제지) : 음식을 갖추어 그들에게 제사지내고,
燒錢以贖之(소전이속지) : 지전(紙錢)을 불살라 죄를 속하게 합니다.
爲十王者(위십왕자) : 시왕이 되어
當不顧禮義(당불고예의) : 예의를 돌보지 않고
縱貪而濫受之乎(종탐이람수지호) : 탐욕스럽게 이를 받아야 하겠습니까?
當考其法度(당고기법도) : 아니면 그 법도를 살펴서
循憲而重罰之乎(순헌이중벌지호) : 법에 따라 이들을 중하게 처벌해야 하겠습니까?
此不肖所以憤悱(차불초소이분비) : 이것이 제게는 분통 터지는 일이었지만
而不敢忍言也(이불감인언야) : 차마 말하지 못하였습니다.
請爲不肖辨之(청위불초변지) : 대왕께서는 저를 위하여 말씀해 주십시오."
王曰(왕왈) : 임금이 말하였다.
噫哉(희재) : "아아.
至於此極也(지어차극야) : 그렇게까지 되었구려.
且人之生也(차인지생야) :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날 때에
天命之以性(천명지이성) : 하늘은 어진 성품을 주셨으며,
地養之以生(지양지이생) : 땅은 곡식으로 길러 주었습니다.
君治之以法(군치지이법) : 임금은 법으로 다스리고,
師敎之以道(사교지이도) : 스승은 도의를 가르쳤으며,
親育之以恩(친육지이은) : 어버이는 은혜로 길러 주었습니다.
由是(유시) : 이로 말미암아
五典有序(오전유서) : 오전(五典)이 차례가 있고
三綱不紊(삼강불문) : 삼강(三綱)이 문란하지 않게 되었으니,
順之則祥(순지칙상) : 이를 잘 따르면 상서로운 일이 생기고,
逆之則殃(역지칙앙) : 이를 거스르면 재앙이 옵니다.
祥與殃在人生受之耳(상여앙재인생수지이) :
상서와 재앙은 사람이 받기에 달려 있을 뿐입니다.
至於死(지어사) : 사람이 죽으면
則精氣已散(칙정기이산) : 정신과 기운은 이미 흩어져,
升降還源(승강환원) :
영혼은 하늘로 올라가고 몸뚱이는 땅으로 내려와 근본으로 돌아가는데,
那有復留於幽冥之內哉(나유부유어유명지내재) :
어찌 다시 어두운 저승 속에 머물러 있겠습니까?
且寃懟之魂(차원대지혼) : 또 원한의 귀신과
橫夭之鬼(횡요지귀) : 횡요의 귀신을
不得其死(부득기사) : 죽지 못하여
莫宣其氣(막선기기) : 그 기운을 펴지 못해,
嗸嗸於戰場黃沙之域(오오어전장황사지역) :
싸움터였던 모래밭에서 시끄럽게 울기도 하고,
啾啾於負命啣寃之家者(추추어부명함원지가자) :
목숨을 잃어 원한 맺힌 집에서 처량하게 우는 일이
間或有之(간혹유지) : 간혹 있기도 합니다.
或托巫以致款(혹탁무이치관) :
그들은 무당에게 부탁해서 사정을 통해 보기도 하고,
或依人以辨懟(혹의인이변대) : 어떤 사람에게 의지하여 원망해 보기도 하는데,
雖精神未散於當時(수정신미산어당시) :
비록 정신이 그 당시에는 흩어지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畢竟當歸於無朕(필경당귀어무짐) : 결국에는 다 없어지고 말게 됩니다.
豈有假形於冥地(기유가형어명지) :
그들이라도 해서 어찌 명부에 잠깐 형체를 나타내서
以受犴獄乎(이수안옥호) : 지옥의 벌을 받겠습니까?
此格物君子(차격물군자) : 이런 일은 사물의 이치를 연구하는 군자가
所當斟酌也(소당짐작야) : 마땅히 짐작할 수 있는 일입니다.
至於齋佛祀王之事(지어재불사왕지사) :
그러나 부처님께 재를 올리고 시왕에게 제사지내는 일은
則尤誕矣(칙우탄의) : 더욱 허탄합니다.
且齋者(차재자) : 또 '재(齋)'란
潔淨之義(결정지의) : 정결하게 한다는 뜻인데,
所以齋不齋而致其齋也(소이재불재이치기재야) :
그렇게 되면 부정한 일을 정결하게 해서 정결됨을 이루는 셈입니다.
佛者(불자) : 부처님을
淸淨之稱(청정지칭) : 청정(淸淨)하다는 뜻이고,
王者(왕자) : 임금은
尊嚴之號(존엄지호) : 존엄하다는 칭호입니다.
求車求金(구차구금) : 임금이 수레를 요구하고 금을 요구한 일은
貶於春秋(폄어춘추) : 『춘추』에서 비판받았고,
用金用綃(용금용초) : 불공드릴 때에 돈을 사용하고 명주를 사용한 일은
始於漢魏(시어한위) : 한나라나 위나라 때에 와서 시작되었습니다.
那有以淸淨之神而享世人供養(나유이청정지신이향세인공양) :
어찌 청정한 신이 인간 세상의 공양을 받고,
以王者之尊而受罪人賄賂(이왕자지존이수죄인회뇌) :
존엄한 임금이 죄인의 뇌물을 받으며,
以幽冥之鬼而縱世間刑罰乎(이유명지귀이종세간형벌호) :
저승의 귀신이 인간 세사이의 형벌을 용서하겠습니까?
此亦窮理之士(차역궁리지사) : 이것도 또한 이치를 연구하는 선비가
所當商略也(소당상략야) : 마땅히 생각해 볼 일입니다.
生又問曰(생우문왈) : 박생이 또 물었다.
輪回不已(륜회불이) : "사람이 윤회(輪廻)를그치지 않고,
死此生彼之義(사차생피지의) : 이승에서 죽으면 저승에서 산다는 뜻을
可問否(가문부) :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曰精靈未散(왈정령미산) : 임금이 말하기를, "정령이 흩어지지 않았을 때에는
則似有輪回(칙사유륜회) : 윤회가 있을 듯하지만,
然久則散而消耗矣(연구칙산이소모의) : 오래 되면 흩어져 소멸되지요."
生曰(생왈) : 박생이 말하였다.
王何故居此異域而爲王者乎(왕하고거차이역이위왕자호) :
"임금께서는 무슨 인연으로 이 이역(異域)에서 임금이 되셨습니까?"
曰我在世(왈아재세) : 임금이 말하기를, "나는 인간 세상에 있을 때에
盡忠於王(진충어왕) : 나라에 충성을 다하며
發憤討賊(발분토적) : 힘내어 도적을 토벌하였습니다.
乃誓曰(내서왈) : 그리고는 스스로 맹세하기를
死當爲厲鬼(사당위려귀) : '죽은 뒤에도 마땅히 여귀가 되어
以殺賊(이살적) : 도적을 죽이리라'고 하였습니다.
餘願未殄而忠誠不滅(여원미진이충성불멸) :
그런데 죽은 뒤에도 그 소원이 남아 있었고 충성심이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에,
故托此惡鄕爲君長(고탁차악향위군장) : 이 흉악한 곳에 와서 임금이 된 것이지요.
今居此地而仰我者(금거차지이앙아자) :
지금 이 땅에 살면서 나를 우러러보는 자들은
皆前世弑逆姦兇之徒(개전세시역간흉지도) : 모두 전세에 부모나 임금을
죽인 시역(弑逆)이거나 간흉(姦凶)들입니다.
托生於此(탁생어차) : 이들은 이곳에 의지해 살면서
而爲我所制(이위아소제) : 내게 통제를 받아
將格其非心者也(장격기비심자야) : 그릇된 마음을 고치려 하고 있습니다.
然非正直無私(연비정직무사) : 그러나 정직하고 사심 없는 사람이 아니면
不能一日爲君長於此地也(불능일일위군장어차지야) :
하루도 이곳에서 임금 노릇을 할 수가 없습니다.
寡人聞子正直抗志(과인문자정직항지) :
내가 들으니 그대는 정직하고도 뜻이 굳어서
在世不屈(재세불굴) : 인간 세상에 있으면서 지조를 굽히지 않았다고 하니,
眞達人也(진달인야) : 참으로 달인(達人)입니다.
而不得一奮其志於當世(이불득일분기지어당세) :
그런데도 그 뜻을 세상에 한번도 펴보지 못하였으니,
使荊璞棄於塵野(사형박기어진야) :
마치 현산의 옥덩이가 티끌 덮인 벌판에 내버려지고
明月沉于重淵(명월침우중연) : 밝은 달이 깊은 못에 잠긴 것과도 같습니다.
不遇良匠(불우량장) : 뛰어난 장인을 만나지 못하면
誰知至寶(수지지보) : 누가 지극한 보물을 알아보겠습니까?
豈不惜哉(기불석재) : 이 어찌 안타깝지 않습니까?
余亦時運已盡(여역시운이진) : 나는 시운이 이미 다하여
將捐弓劒(장연궁검) : 장차 활과 칼을 버리고아 이 자리를 떠나야 합니다.
子亦命數已窮(자역명수이궁) : 그대도 또한 명수(命數)가 이미 다하였으므로,
當瘞蓬蒿(당예봉호) : 곧 인간세상을 떠나야 합니다.
司牧此邦(사목차방) : 그러니 이 나라를 맡아 다스릴 분이
非子而誰(비자이수) : 그대가 아니면 누구겠습니까?"
乃開宴極歡(내개연극환) : 그리고는 잔치를 열어 극진히 즐겁게 하여 주었다.
問生以三韓興亡之跡(문생이삼한흥망지적) :
임금이 박생에게 삼한(三韓)이 흥하고 망한 자취를 물었더니,
生一一陳之(생일일진지) : 박생이 하나하나 이야기하였다.
至高麗創業之由(지고려창업지유) : 고려가 창업한 이야기에 이르자,
王歎傷再三曰(왕탄상재삼왈) :
임금이 두세 번이나 탄식하며 서글퍼하더니 말하였다.
有國者(유국자) : "나라를 다스리는 이가
不可以暴劫民(불가이폭겁민) : 폭력으로 백성을 위협하여서는 안 됩니다.
民雖若瞿瞿以從(민수약구구이종) : 백성들이 두려워 따르는 것 같지만,
內懷悖逆(내회패역) : 마음속으로는 반역할 뜻을 품고 있습니다.
積日至月(적일지월) : 이 가고 달이 가면
則堅冰之禍起矣(칙견빙지화기의) : 날커다란 재앙이 일어나게 됩니다.
有德者(유덕자) : 덕이 있는 사람은
不可以力進位(불가이역진위) : 힘을 가지고 임금자리에 나아가지 않습니다.
天雖不諄諄以語(천수불순순이어) :
하늘이 비록 임금이 되라고 간곡하게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示以行事(시이행사) : 그가 올바르게 일하는 모습을 백성들에게 보여
自始至終(자시지종) : 백성들의 뜻에 의하여 임금이 되게 합니다.
而上帝之命嚴矣(이상제지명엄의) : 상제(上帝)의 명은 엄합니다.
蓋國者民之國(개국자민지국) : 나라는 백성의 나라이고,
命者天之命也(명자천지명야) : 명령은 하늘의 명령입니다.
天命已去(천명이거) : 그런데 천명이 떠나가고
民心已離(민심이리) : 민심이 떠나가면,
則雖欲保身(칙수욕보신) : 임금이 비록 제 몸을 보전하려고 하더라도
將何爲哉(장하위재) : 어찌 되겠습니까?"
又復敍歷代帝王崇異道致妖祥之事(우복서역대제왕숭이도치요상지사) :
박생이 또 역대의 제왕들이 이도(異道)를 숭상하다가 재앙 입은 이야기를 하자,
王便蹙額曰(왕편축액왈) : 임금이 문득 이맛살을 찌푸리며 말하였다.
民謳謌而水旱至者(민구가이수한지자) :
"백성들이 임금의 덕을 노래하는데도 큰물과 가뭄이 닥치는 것은
是天使人主重以戒謹也(시천사인주중이계근야) :
하늘이 임금으로 하여금 일을 삼가라고 경고하는 것입니다.
民怨咨而祥瑞現者(민원자이상서현자) :
백성들이 임금을 원망하는데도 상서로운 일이 나타나는 것은
是妖媚人主益以驕縱也(시요미인주익이교종야) :
요괴가 임금에게 아첨하여 더욱 교만 방자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且歷代帝王致瑞之日(차력대제왕치서지일) :
제왕들에게 상서로운 날들이 나타났다고 해서
民其按堵乎(민기안도호) : 백성들이 편안해질 수 있겠습니까?
呼寃乎(호원호) : 원통하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曰姦臣蜂起(왈간신봉기) : 박생이 말하기를, "간신이 벌떼처럼 일어나
大亂屢作(대난루작) : 큰 난리가 자주 생기는 데도
而上之人(이상지인) : 임금이
脅威爲善以釣名(협위위선이조명) :
백성들을 위협하며 잘 한 일이라 생각하고 명예를 구하려 한다면,
其能安乎(기능안호) : 그 나라가 어찌 평안할 수 있겠습니까?"
王良久(왕량구) : 임금이 한참 있다가
歎曰(탄왈) : 탄식하며 말하였다.
子之言(자지언) : "그대의 말씀이
是也(시야) : 옳습니다."
宴畢(연필) : 잔치가 끝나자
王欲禪位于生(왕욕선위우생) : 임금이 박생에게 임금자리를 물려주기 위하여
乃手制曰(내수제왈) : 손수 선위문(禪位文)을 지었다.
炎洲之域(염주지역) : 염주의 땅은
實是瘴厲之鄕(실시장려지향) : 실로 풍토병이 생기는 곳이므로,
禹跡之所不至(우적지소부지) : 우(禹)임금의 발자취도 이르지 못하였고,
穆駿之所未窮(목준지소미궁) : 목왕(穆王)의 준마도 오지 못하였다.
彤雲蔽日(동운폐일) : 붉은 구름이 해를 가리고
毒霧障天(독무장천) : 독한 안개가 하늘을 막고 있으며,
渴飮赫赫之洋銅(갈음혁혁지양동) : 목이 마르면 뜨거운 구릿물을 마셔야 하고
飢餐烘烘之融鐵(기찬홍홍지융철) :
배가 고프면 불에 쪼인 뜨거운 쇳덩이를 먹어야 한다.
非夜叉羅刹(비야차나찰) : 야차(夜叉)나 나찰(羅刹)이 아니면
無以措其足(무이조기족) : 발붙일 곳이 없고,
魑魅魍魎(리매망량) : 도깨비가 아니면
莫能肆其氣(막능사기기) : 그 기운을 펼 수가 없는 곳이다.
火城千里(화성천리) : 화성이 천리나 뻗어 있고
鐵嶽萬重(철악만중) : 철산이 만겹이나 둘린 데다,
民俗强悍(민속강한) : 민속이 강하고 사나워서,
非正直無以辨其姦(비정직무이변기간) :
정직하지 않으면 그 간사함을 판단할 수가 없다.
地勢凹隆(지세요융) : 지세도 굴곡이 심해 험준하니,
非神威不可施其化(비신위불가시기화) :
신통한 위엄이 아니면 이들을 교화시킬 수가 없다.
咨爾東國某(자이동국모) : 아아. 동쪽 나라에서 온 그대 박아무개는
正直無私(정직무사) : 정직하고 사심(私心)이 없으며,
剛毅有斷(강의유단) : 강직하고 과단성이 있다.
著含章之質(저함장지질) : 남을 포용하는 자질을 갖추고 있으며,
有發蒙之才(유발몽지재) : 어리석은 자를 계발하는 재주도 지니고 있다.
顯榮雖蔑於身前(현영수멸어신전) :
인간 세상에 살아 있을 때에는 비록 현달하지 못하였지만,
綱紀實在於身後(강기실재어신후) : 죽은 뒤에는 기강을 바로잡을 수 있을 것이다.
兆民永賴(조민영뢰) : 모든 백성이 길게 믿고 의지할 자가
非子而誰(비자이수) : 그대가 아니고 누구이겠는가?
宜導德齊禮(의도덕제예) : 마땅히 도덕으로 인도하고 예법으로 정체하여,
冀納民於至善(기납민어지선) : 백성들을 지극히 착하게 만들라.
躬行心得(궁행심득) : 몸소 실천하고 마음으로 깨달아,
庶躋世於雍熙(서제세어옹희) : 세상을 태평하게 만들라.
體天立極(체천입극) : 하늘을 본받아 뜻을 세우고,
法堯禪舜(법요선순) : 요임금이 순임금에게 임금자리를 물려주었던 일을 본받아
予其作賓(여기작빈) : 나도 이 자리를 그대에게 물려주겠다.
嗚呼欽哉(오호흠재) : 아아. 그대는 삼가 받을 지어다.
生奉詔(생봉조) : 박생이 이 글을 받아들고
周旋再拜而出(주선재배이출) : 응낙한 뒤에, 두 번 절하고 물러 나왔다.
王復勑臣民致賀(왕복래신민치하) :
임금은 다시 신하와 백성들에게 명령을 내려 축하드리게 하고,
以儲君禮送之(이저군예송지) : 태자의 예절로써 그를 전송하게 하였다.
又勑生曰(우래생왈) : 그리고는 박생에게 말하였다.
不久當還(불구당환) : "머지 않아 다시 돌아오셔야 하오.
勞此一行(노차일행) : 이번에 가거든 수고롭지만
所陳之語(소진지어) : 내가 한 말들을
傳播人間(전파인간) : 전하여 인간 세상에 널리 퍼뜨리시오.
一掃荒唐(일소황당) : 황당한 일을 다 없애 주시오."
生又再拜致謝曰(생우재배치사왈) : 박생이 또 두 번 절하여 감사드리고 말하였다.
敢不對揚休命之萬一(감부대양휴명지만일) :
"만 분의 하나라도 그 뜻을 널리 전하지 않겠습니까?"
旣出門(기출문) : 박생이 문을 나서자,
挽車者(만차자) : 수레를 끄는 자가
蹉跌覆轍(차질복철) : 발을 헛디뎌 수레바퀴가 넘어졌다.
生仆地驚起而覺(생부지경기이각) :
그 바람에 박생도 땅에 쓰러졌다. 깜짝 놀라서 일어나 깨어 보니
乃一夢也(내일몽야) : 한바탕 꿈이었다.
開目視之(개목시지) : 눈을 떠보니
書冊抛床(서책포상) : 책은 책상 위에 내던져 있었고,
燈花明滅(등화명멸) : 등잔불은 가물거리고 있었다.
生感訝良久(생감아양구) : 박생은 한참 의아하게 여기다가,
自念將死(자념장사) : 장차 죽을 것을 알게 되었다.
日以處置家事爲懷(일이처치가사위회) :
그래서 날마다 집안 일을 정리하기에 전념하였다.
數月有疾(수월유질) : 박생이 몇 달 뒤에 병에 걸렸는데,
料必不起(료필불기) : 결코 일어나지 못할 것을 스스로 알았다.
却毉巫而逝(각의무이서) : 그래서 의원과 무당을 사절하고 세상을 떠났다.
其將化之夕(기장화지석) : 그가 세상을 떠나려던 날 저녁에
夢神人告於四鄰曰(몽신인고어사린왈) :
이웃집 사람의 꿈에 어떤 신인이 나타나서 말하길,
汝鄰家某公(여린가모공) : "네 이웃집 아무개가
將爲閻羅王者云(장위염라왕자운) : 장차 염라대왕이 될 것이다."고 했다.
-金鰲新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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