舍廊房(사랑방)

삼천냥 빚을 갚아준 돌장승

華谷.千里香 2016. 9. 23. 22:04






삼천냥 빚을 갚아준 돌장승


영조 대왕 때 경북 안동 고을에 "달래"라는

이름의 소금장수 딸이 살고 있었다.

늙으신 부모님과 오순도순 잘 살아온 달래네는 언제부터인가

아버지가 앓아 누워 버리면서, 남의 논을 부쳐 먹고 살아오던

일마저 할 수 없게되자 살 길이 막연하여 고을 동헌에서

포흠(나라의 돈을 빌리는 것)을 빌려쓰게 되었다.

 

곧 나을 줄 알았던 아버지의 병환은 차도가 없고

빌려다 쓴 포흠도 자그마치 삼천냥으로 불어나 있었다.

어린 달래는 남의 집 품팔이를 하면서 단 얼마라도

가사에 보탬을 주려했지만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달래의 고을에

암행어사가 내려왔다는 소문이 나돌기 시작했다.

안동부사는 암행어사가 내려온다는 말에

즉시 달래네 집에 포졸을 보내어

삼천냥의 빚을 곧 갚도록 전달을 했다.

 

당시 포흠 천냥을 갚지 못하면 국법에 의해 사형에 처하게 되어 있었다.

이 말을 전해들은 달래네는 별 수 없이 죽을 날을 기다려야 했다.

이래서 시작된 것이 달래의 소금 장사였다.

그러나 소금 장사를 한다고 해서 그 많은 포흠을 갚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내막을 아는 동네 사람들은 달래의 처지를 동정하여

소금을 약간 사주기는 했지만 하루 이틀에 모아질리도 없는

포흠 빚이고 보면 달래나 동네사람이나 답답할 뿐이었다.

이럴즈음 안동 고을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 한 젊은이가 있었다.

그는 성질이 게으르고 싸움을 좋아해서

나이 서른이 다 되도록 결혼도 못한 부랑자였다.

한참을 걷던 부랑자는 주막이 있는 거리에 도착하였다.

 

주막에서 풍채가 좋은 백발노인을 만나

술잔을 나눈 후 안동길 동행인이 되었다.

어느 마을로 들어섰을 때였다.

그 동네에서 가장 잘 사는 것 같이 보이는

집에서 울음소리가 흘러 나왔다.

주인의 열 살짜리 아들이 기절한 것이다.

맥을 짚을 줄 아는 백발노인은 안으로 들어가 진맥을 하더니

사내애가 지네를 먹었음을 알고 닭의 생피를 먹여 아들을 소생시켰다.


집안에 대를 이을 자식을 구해 주어 고맙다고 크게 인사를 하며

융숭한 대접까지 하고 천냥 짜리 어음을 한 장 주었다.

 
주인과 헤어진 백발노인은 그 어음을 부랑자에게 맡겼다.

젊은이는 노인의 귀신이 곡할 재주를 보았고

거기다 거액의 돈까지 맡기니

무슨 속셈인지 알 수가 없어 따라가는 수밖에 없었다.

한낮쯤 되어서 주막에 들러 미인인 주모에게

주인댁이 오늘 밤 죽을 운이네.

내가 살아날 비방을 가르쳐 주고 주인댁이 살아나면

내게 천냥 짜리 어음을 하나만 주시오!

한 뒤에 비방을 가르쳐 주어 액땜을 하였다.

 

그날 밤 외간 남자와 몰래 만날 약속이 되어 있었는데

그것을 눈치챈 남편이 몰래 숨어서 그 현장을 잡아서

죽이려고 하는 것을 노인이 미리 알고 살길을 가르쳐 주었던 것이다.

주인 여자는 노인에게 새삼 탄복을 하며 어음 천냥을 주었다.

이렇게 해서 그 집을 나선 두 사람은 해가 질 무렵 어느 산기슭에 도착했다.

마침 산 중턱에 많은 사람이 모여 막 묘를 파고 입관시키려는 중이었다.

 

노인은 상제에게로 가서 여기는 명당이 아님을 증명해 보이고 난 뒤,

오색이 영롱하게 비쳐나는 묘터를 잡아 주었다.

 
역시 그 대가로 어음 천냥을 받았다.

이리하여 삼천냥의 어음을 벌어 들인 노인은 모두 부랑자에게 맡겼다.

젊은이는 혹시 저 늙은 영감이 귀신이나 여우가 둔갑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계속 노인의 뒤를 따랐다.

그런데 노인은 자꾸 깊은 산 속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산 중턱 쯤 왔을 때 노인은 소변을 보고 온다고 하였다.

젊은이는 노인을 기다렸으나

아무리 기다려도 돌아오지 않자

옆에 있는 바위에 걸터앉아 기다렸다.

그런데 노인이 사라진 쪽에서 갑자기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 밤중에 아무도 없는 산 속에서

여자의 중얼거리는 음성을 들으니 전신이 오싹해 졌다.

그러나 은근히 호기심이 나서 그 쪽을 보니

어떤 처녀가 石像(석상)앞에 하얀 밥과 산나물을 올려놓고

[포흠 삼천냥 어찌구...]'하는 대목이

자기 주머니 속의 금액과 너무나 같았다.

그리고 석상의 얼굴을 자세히 보니 노인의 얼굴임이 분명했다.

 
틀림없이 그 노인은 석상의 화신이었던 것이다.

처녀가 매일같이 찾아와서 삼천냥의 빚 때문에 밤새 비는 것을 보자

그 정성에 감동되어 손수 빚을 마련하여

부랑자로 하여금 전하도록 하였던 것이다.

 
젊은이는 노인의 마음,

아니 석상의 뜻을 잘 이해하고도 남을 것 같아

놀라는 처녀를 달래어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다음 날 두 사람은 포흠 삼천냥을 갚고

山神의 중매로 혼인까지 하여

아들 딸 낳고 오래 오래 행복하게 살았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