舍廊房(사랑방)

聊齋志異(요재지이)-蒲松齡(포송령)

華谷.千里香 2016. 11. 27. 22:30




聊齋志異(요재지이)-蒲松齡(포송령)


人皮(인피)

산서성(山西省) 태원(太原) 지방에 왕(王)씨 성을 가진 선비가 살았다.

어느날 아침 일찍 길을 가던 도중 한 여인을 만났다.

그 여인은 괴나리 봇짐을 품에 안고 바삐 걷는데,

걸음걸이가 힘겨워 보였다. 왕(王) 선비는 걸음을 재촉하여

그 여인을 따라 잡았다.

따라 잡고 보니 이팔청춘의 아리따운 낭자가 아닌가.

왕 선비는 속으로 좋아하는 마음이 생겨 그 여인에게 물었다.

 "무슨 일로 이른 아침부터 홀로 길을 가시오?" 여인이 가로되,

 "피차 각자의 길을 가는 몸, 근심을 덜어줄 수 없을 것인 바,

구태여 뭘 물으시옵니까!" 왕 선비 가로되, "낭자, 무슨 근심이 있소?

혹시 내가 도와줄 수 있을지도 모르니 사양하지 마시오.

" 이에 여인이 상심한 듯 이르기를, "소녀 부모가 재물을 탐하여

소녀를 고관대작의 집에 첩으로 팔았사옵니다.

정실 부인은 투기가 심하여 밤낮으로 소녀를 욕하고 때리니,

이에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멀리 도주하려 하옵니다.

" 이 말을 듣고 왕 선비 묻기를, "그럼 어디 갈데라도 있소?

" 여인이 가로되, "도주중인 몸, 어찌 갈만한 데가 있겠나이까.

" 이에 왕 선비 가로되, "내 집이 이 곳에서 멀지 않소.

누추하지만 낭자께서 친히 방문해 봄이 어떠하오.

" 이에 여인이 기뻐하며 그의 말을 따랐다.

선비는 여인의 괴나리 봇짐을 대신 들고,

길을 안내하여 여인과 함께 집으로 돌아갔다.

 

여인이 방 안을 둘러보니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이에 선비에게 묻기를, "어찌하여 댁에 사람이 아무도 없사옵니까?

" 선비가 답하여 가로되, "여기는 서재라서 그렇소." 여인이 가로되,

 "이 곳이 적당하겠군요. 만일 저를 어여삐 여겨 이곳에서 살게 해 주신다면,

저에 관한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아주시와요.

" 선비는 그렇게 하겠다고 응했고, 이에 그녀와 하룻밤을 같이 보냈다.

선비가 그녀를 밀실과도 같은 서재에 숨겼기에, 며칠이 지나도

아무도 알아채는 이가 없었다.

선비는 아내에게만 살짝 이 일을 얘기했다.

선비의 부인 진(陳) 씨는 그 여인이 본래 고관대작의 첩이거나

그 첩에 딸린 하녀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생겨 선비에게

그 여인을 잡아두지 말고 얼른 쫓아 보내라고 권했으나,

선비는 듣지 않았다.

 

어느날, 선비는 저잣거리엘 나갔고,

그 곳에서 우연히 한 도사(道士)와 마주쳤다.

도사는 선비를 보자 깜짝 놀라며 물었다.

 "혹시 최근에 뭔가를 만난 적 없소?" 선비가 답하여 가로되,

 "없소." 이에 도사가 가로되, "공(公)의 몸에 요사스러운

기운이 감돌고 있소. 근데 어찌 없다고 하시오?

" 선비는 결단코 없다고 항변했다.

이에 도사가 떠나며 탄식하기를,

"오호통재(嗚呼痛哉)라!

세상에 과연 죽음이 임박했는데도 깨닫지 못하는 자가 있구나!

" 선비는 이 말을 듣고 괴이하게 여겨,

그 여인에 대해 의심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면 명명백백 아리따운 미인인 것을.

어찌 요괴일 수 있단 말인가.

틀림없이 도사가 귀신을 쫓네 어쩌네 하며 공짜 밥이나

얻어 먹으려는 수작이겠거니 하고 여겼다.

 

이윽고 선비는 서재로 돌아왔다.

근데 서재 바깥 대문이 안쪽에서 잠겨있어 들어갈 수가 없었다.

마음속에 또 의구심이 피어 올랐고, 이에 무너진 담장을 뛰어넘어

서재 입구로 갔지만, 서재 방문도 잠겨있었다.

선비는 살금살금 창가로 걸어가 창문을 통해 서재 안을 들여다 봤다.

놀랍게도 서재 안에는 여인은 온데간데 없고 흉칙한 몰골의

귀신이 있는 게 아닌가.

귀신의 안색(顔色)은 무섭게 창백했고, 이빨은 날카롭기가 톱날과 같았다.

귀신은 침대 위에 사람 가죽[人皮]을 펼쳐놓고 붓을 들어

그 인피(人皮)에 채색을 하고 있었다.

채색이 다 끝나자 붓을 집어던지고는 그 人皮를 집어들어 옷을 털듯

툭툭 털더니 자신의 몸 위에 뒤집에 썼다.

그러자 다시 그 여인의 모습으로 화(化)했다.

선비는 이 광경을 보자마자 대경실색하여, 엉금엉금 기어서 밖으로 나왔다.

 

선비는 급히 아까 그 도사를 찾았으나,

도사가 어디로 갔는지 알 길이 없었다.

이에 여기저기 수소문한 끝에 야외(野外)에서 그 도사를 만날 수 있었다.

선비는 무릎을 꿇고 도사에게 도움을 청했다.

도사가 가로되, "내가 직접 그 요괴를 물리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시오.

따지고 보면 그 요물도 가련한 처지라오.

오랜 세월을 묵어 간신히 사람의 몸을 취하게 되었으니 말이오.

나도 그 요물의 생명까지 해하고 싶지는 않소.

" 이에 도사는 선비에게 불진(拂塵 : 도사가 요괴를 쫓을 때

사용하는,파리채 내지 총채 비슷한 도구)을 한 자루 주며

그것을 침실 문 앞에 걸어놓으라고 일렀다.

도사는 청제묘(靑帝廟 : 靑帝를 모시는 사당. 靑帝는 청룡, 백호,

주작, 현무 중 청룡에 해당하는 동쪽 하늘을 관장하는 신)에서

다시 만나기로 선비와 약속한 후 떠났다.


집으로 돌아온 선비는 서재로 들어갈 용기가 나지 않아, 침실로 갔다.

도사가 일러준 대로 불진(拂塵)을 걸어놓고 잠을 청했다.

해가 지고 일경(一更 : 약 저녁 8-9시경)이 되자

문 밖에서 "사악사악"하는 소리가 났다.

선비는 직접 훔쳐볼 엄두가 나지 않아 부인 진(陳)씨에게 대신 훔쳐보게 했다.

부인이 살펴보니, 그 여인이 침실로 다가오다가

문앞에 불진(拂塵)이 걸려있는 것을 보더니

감히 들어오질 못하고 밖에 서서 이를 갈고 있었다.

여인은 한참을 그렇게 서 있다가 가버렸다.

잠시 후 여인이 또 다가오더니 욕을 퍼부어 댔다.

"도사가 날 겁주는구나!

이미 잡아먹은 사람을 어찌 도로 뱉어내란 말이냐!

" 여인은 그 불진(拂塵)을 떼어내 산산 조각내 버리더니

침실 문을 부수고 들어와 선비의 침대로 곧장 기어올라

선비의 배를 가르고 심장을 파내어 가버렸다.

부인 진씨가 비명을 질러 하녀가 들어와 촛불을 들고 비춰보니

선비는 이미 죽었고 배에서 흘러나온 피가 사방에 난자했다.

진씨는 공포에 질려 울면서도 소리를 내지 못하였다.

 
익일, 부인은 선비의 동생을 시켜 청제묘(靑帝廟)의

도사를 찾아가 간밤의 일을 고하게 했다.

도사가 노하여 가로되, "내 본디 그 요물을 가련하게 여겼거늘,

어찌 이리 방자하기 이를 데 없단 말이냐!

" 도사는 선비의 동생을 따라 선비의 집으로 와 보았으나,

여인은 이미 온데간데 없었다.

도사는 잠시 고개를 들어 사방을 살펴본 후 가로되,

"음, 다행히 아직 멀리 도망가진 못했군.

" 이에 선비의 동생에게 묻기를, "남원(南院 :뜰 남쪽의 방)은

누구의 처소요?" 동생이 가로되, "소생의 처소이옵니다.

" 이에 도사가 가로되, "그 요물은 지금 그 곳에 있소이다.

" 선비의 동생은 아연실색했다. 도사가 또 묻기를,

 "혹시 낯선 사람이 공(公)의 처소에 온 적은 없소?

" 동생이 답하여 가로되,"소생은 아침부터 청제묘(靑帝廟)에

갔던 터라 잘 알지 못하겠사오니,

지금 잠깐 가서 알아보고 돌아 오겠나이다.

" 이에 선비의 동생은 자신의 처소로 갔고,잠시 후 다시 돌아왔다.

 

"도사님 말씀대로 과연 그런 일이 있었사옵니다.

아침에 한 노파가 찾아와 하녀일을 자청했는 바,

소생의 내자(內子:부인)가 그 청을 받아들여 아직까지 머물러 있사옵니다.

" 도사가 가로되,"그 노파가 바로 그 요괴요!

" 이에 다 함께 동생의 처소로 갔다.

도사는 목검을 들고 뜰 한가운데 서서 외쳤다.

"이 저주받을 악귀야!

얼른 나와 네가 부순 내 불진(拂塵)을 물어내라!

" 방안에 있던 노파는 이에 겁을 먹고 밖으로 나와 도망치려 했다.

도사는 그 노파를 쫓아가 목검으로 내리쳤다.

노파는 단칼에 땅바닥에 쓰러졌고,

"쫘악" 소리와 함께 人皮가 벗겨지면서 흉악한 귀신으로 化했다.

귀신은 땅바닥에 누워 비명을 지르니, 그 소리가 마치 돼지와 같았다.

도사가 목검으로 귀신의 목을 자르자,

귀신의 몸은 짙은 연기로 化해 땅 위에 뭉쳤다.

도사는 호리병 한 개를 꺼내 마개를 뽑아

그 연기의 한 가운데에 갖다 대었다.

그러자 "쉬익" 소리를 내며 연기가 호리병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연기는 순식간에 다 빨려 들어갔고,

도사는 호리병 마개를 닫아 자루속에 집어 넣었다.

모두가 그 人皮를 살펴보니 눈썹, 눈, 손, 발등 갖추어지지 않은 것이 없었다.

도사는 족자를 둘둘 말듯이 그 人皮를 둘둘 말아서

자루속에 집어 넣고는 모두에게 작별을 고했다.

 

이 때, 선비의 부인 진(陳)씨가 문 앞에서 무릎을 꿇고

울면서 도사에게 선비를 되살릴 방법을 청했다.

도사가 방법이 없다고 거절하자 부인 진씨는 더욱 비통해하며

땅바닥에 엎드려 일어날 생각을 안 했다.

도사는 깊히 생각한 후 가로되, "나는 법술(法術)이 높지 못해

죽은 사람을 되살리는 일은 못하오.

내가 아는 어떤 사람이 있긴 한데,

혹시 그 사람이라면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소.

" 부인이 물었다.

 "그게 누구이옵니까?" 도사가 가로되,

"저잣거리에 한 광인(狂人)이 있소.

늘상 분뇨(糞尿) 위에 누워 지낸다오.

한번 그 사람을 찾아가서 청해 보시구려.

만일 그 광인이 부인을 욕보이더라도 부인은 결코 화를 내서는 아니되오!

이를 명심하시오."

선비의 동생은 도사가 말하는

그 광인이 누군지 알고 있었다.

그래서 도사에게 작별을 고하고는 부인 진씨와 함께 저잣거리로 갔다.

 
가보니 과연 걸인(乞人) 하나가 노상에서 미친 듯이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콧물이 석자인 것이 더러워서 도저히 가까이 다가갈 수가 없었다.

부인 진씨는 무릎걸음으로 그에게 다가갔다.

걸인이 웃으면서 가로되,

 "아리따운 낭자, 나를 사랑하시오?

" 진씨는 그에게 찾아온 연유를 고했다.

걸인이 박장대소하며 가로되,

"천하의 남자 누구나 다 부인의 남편이 되어줄 수 있거늘,

이미 죽은 사람을 도로 살려 뭐 한단 말이오!

" 그러나 진씨는 고집스레 애원했다.

이에 걸인이 가로되, "오호(嗚呼) 괴이하도다!

이미 죽은 사람을 나에게 와서 도로 살려내라니.

내가 무슨 염라대왕이라도 되는가!" 걸인은 말을 마치자마자

지팡이를 집어들어 진씨를 마구 때렸다.

진씨는 아픔을 참으며 그 매를 다 받았다.

저잣거리의 사람들은 무슨 신기한 광경이라도 되는 양

하나 둘 걸인과 부인 진씨의 둘레에 모여들었다.

걸인은 한 움큼이 넘는 가래침을 뱉어내더니 그것을 움켜쥐고

진씨의 입 앞으로 가져갔다.

 "먹어라!" 진씨는 안색이 붉어지더니 난처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나 한편으로 결코 화내지 말라던 도사의 분부를 기억하며

억지로 그 가래침을 받아 삼켰다.

목구멍으로 넘기자 무슨 묵직한 덩어리라도 되는 양 딱딱했으며,

 "거억거억"하며 내려가 가슴께에 가서 멈추었다.

걸인이 포복절도하며 가로되, "아리따운 부인,

나를 사랑하는구료!" 이에 걸인은 몸을 일으키더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버렸다.

진씨는 몰래 그의 뒤를 밟았고, 어느 사당에 까지 이르렀다.

진씨는 급히 쫓아가 걸인을 찾았으나 걸인은 행방이 묘연했다.

진씨는 앞 뒤로 샅샅히 찾아 보았으나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다.

 
부인 진씨는 수치스럽고 원통한 마음을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남편을 잃은 슬픔에, 미친자의 가래를 삼킨 치욕까지 겹쳐

고개를 들었다 놓았다 하며 서럽게 통곡했다.

그냥 콱 죽어 버리고만 싶었다.

부인은 남편의 핏자국을 닦아 내고 시신을 수습하기 시작했다.

집안의 사람들은 다만 멀찌감치 서서 지켜보기만 할 뿐

감히 가까이 다가올 엄두를 내지 못하였다.

부인은 남편의 시신을 부둥켜 안고 창자를 추스리면서 더욱 비통하게 울었다.

울다울다 목소리까지 갈라졌다.

 
이 때 갑자기 부인은 구토기를 느꼈다.

가슴속 횡경막 부근에 뭔가가 걸린 것만 같았다.

막 구토가 나오려고 해서 남편의 시신으로 부터

고개를 돌리려고 했으나 한발 늦었다.

묵직한 물체가 부인의 입에서 튀어 나왔고

그것은 곧장 남편 시신의 갈라진 복부 사이로 떨어졌다.

깜짝 놀라 쳐다보니 사람의 심장이 아닌가!

그 심장은 남편 시신의 뱃속에서 통통 뛰고 있었는데,

뜨거운 기운을 내뿜는 것이 마치 모락모락 연기가 나는 것만 같았다.

부인은 이를 괴이하게 여겨 두 손으로 시신의 갈라진

복부 양 쪽을 잘 맞물린 후 잔뜩 힘을 주어 봉했다.

손의 힘을 살짝 빼자 벌어진 틈 사이로 더운 연기가 새어나왔다.

이에 부인은 비단을 찢어 시신의 복부를 단단히 동여 매었다.

손으로 시신을 만져보니 조금씩 온기를 되찾고 있었다.

부인은 이불을 가져와 시신을 덮었다.

한밤중에 이불을 들춰보니 시신의 코에 콧김이 느껴졌다.

결국 날이 밝자 왕(王) 선비는 되살아 났다.

선비가 가로되, "한바탕 꿈을 꾼 것만 같소.

다만 복부에 살짝살짝 통증이 느껴지긴 하오.

" 이에 복부의 상처났던 곳을 살펴보니,

이미 동전만한 딱지가 앉아 있었다.

오래지 않아 선비는 완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