陶淵明(도연명)

歸去來辭(귀거래사) - 陶淵明

華谷.千里香 2015. 12. 17. 09:58

 

 

 

 

 

 

歸去來辭(귀거래사) - 陶淵明

 

歸去來兮(귀거래혜) 돌아가리라!

田園將蕪胡不歸(전원장무호불귀) 전원이 황폐해 지려는데 어찌 아니 돌아가리.

旣自以心爲形役(기자이심위형역) 이미 스스로 마음이 몸의 부리는 바가 되었거니,

奚惆悵而獨悲(해추창이독비) 무엇이 서러워 홀로 슬퍼하고 있으리.

悟已往之不諫(오이왕지불간) 이미 지난 것은 탓 할 수 없음을 깨달았으니,

知來者之可追(지래자지가추) 앞일을 쫓아감이 옳은 것임을 알도다.

寔迷途其未遠(식미도기미원) 사실 길은 어긋났으나 그리 멀어진 건 아니니,

覺今是而昨非(각금시이작비) 지금이 바른 길이며 지난날이 틀렸음을 깨달았도다.

舟搖搖以輕颺(주요요이경양)배는 흔들흔들 가볍게 떠서가고,

風飄飄而吹衣(풍표표이취의) 바람은 산들산들 옷자락을 날리누나.

問征夫以前路(문정부이전로) 지나는 이에게 앞길을 물어서 가니,

恨晨光之熹微(한신광지희미) 새벽빛이 희미한 것이 한스럽기만 하다.

乃瞻衡宇(내첨형우) 드디어 집이 멀리 바라다 보이니,

載欣載奔(재흔재분) 기쁜 마음에 뛰어서 가네.

僮僕歡迎(동복환영) 머슴아이 반가이 맞이하고,

稚子候門(치자후문) 어린 아이들 문 앞에 기다리고 있네.

三徑就荒(삼경취황) 세 갈래 오솔길은 잡초에 묻혔어도,

松菊猶存(송국유존) 소나무와 국화는 그대로 남아 있네.

幼入室(휴유입실) 어린 놈 대리고 방으로 들어서니,

有酒盈罇(유주영준) 술항아리 가득히 술이 채워져 있네.

引壺觴以自酌(인호상이자작) 술병과 잔 가져다가 혼자 따라 마시며,

眄庭柯以怡顔(면정가이이안) 뜰 안 나무 가지를 바라보며 기쁜 얼굴을 하네.

依南以寄傲(의남창이기오) 남쪽 창에 기대어 거만을 떨어보니,

審容膝之易安(심용슬지이안) 작디작은 방이지만 편안함을 느끼도다.

園日涉以成趣(원일섭이성취) 정원을 매일 거닐어 정취가 생겨나고,

門雖設而常關(문수설이상관) 문은 달려 있으나 늘 닫아 두고 있네.

策扶老以流憩(책부노이유게) 지팡이 짚고 이리저리 거닐다 쉬기도 하고,

時矯首而遐觀(시교수이하관) 때로는 고개 들어 멀리 바라본다.

雲無心以出岫(운무심이출수) 구름은 무심히 골짝에서 피어오르고,

鳥倦飛而知還(조권비이지환) 새도 날다 지치면 돌아올 줄을 아네.

景翳翳以將入(경예예이장입) 해도 뉘엿뉘엿 넘어가려 하는데,

撫孤松而盤桓(무고송이반환) 외로운 소나무 어루만지며 자리 뜰 줄 모르네.

歸去來兮(귀거래혜) 돌아왔도다!

請息交以絶遊(청식교이절유) 사귐도 그만두고 어울림도 끊으리라.

世與我而相違(세여아이상위) 세상과 나는 서로 어긋나기만 하니,

復駕言兮焉求(복가언혜언구) 다시 벼슬길 올라서 무엇을 얻겠는가.

悅親戚之情話(열친척지정화) 친척들과 정담을 즐기고,

樂琴書以消憂(낙금서이소우) 거문고와 서책을 즐기며 근심을 삭이리.

農人告余以春及(농인고여이춘급) 농부가 나에게 봄이 왔음을 알려주니,

將有事于西疇(장유사우서주) 서쪽 밭에 나가서 할 일이 있겠구나.

或命巾車(혹명건차) 때로는 천막을 두른 수레를 몰기도 하고,

或棹孤舟(혹도고주) 때로는 외로운 나룻배 노를 저었다.

旣窈窕以尋壑(기요조이심학) 이윽고 깊고 깊은 골짝을 찾아가고,

亦崎嶇而經丘(역기구이경구) 또한 험하고 가파른 언덕길도 지났다네.

木欣欣以向榮(목흔흔이향영) 나무들은 무성하게 가지를 뻗고,

泉涓涓而始流(천연연이시류) 샘물은 졸졸 흘러내린다.

羨萬物之得時(선만물지득시) 만물이 제철을 만나 보기가 좋건마는,

感吾生之行休(감오생지행휴) 나의 삶 가다 멈출 생각에 가슴이 벅차구나.

已矣乎(이의호) 아서라!

寓形宇內復幾時(우형우내복기시) 세상에 머물 날이 다시 얼마이랴!

曷不委心任去留(갈불위심임거류)마음을 어찌가고 머무는 순리에 맡기지 아니하랴!

胡爲遑遑欲何之(호위황황욕하지) 어디로 가려고 그리 서두르는가?

富貴非吾願(부귀비오원) 부귀는 내가 바라던 바도 아니었고,

帝鄕不可期(제향불가기) 하늘나라는 기약할 수 없는 일.

懷良辰以孤往(회양진이고왕) 날씨 좋다 싶으면 홀로 나가 거닐다,

或植杖而耘耔(혹식장이운자) 가끔 지팡이 세워 두고 김매고 북돋우네.

登東皐以舒嘯(등동고이서소) 언덕에 올라가서 노랫가락 읊조리고,

臨淸流而賦詩(임청류이부시) 맑은 시냇가에 나와 시도 지어보네.

聊乘化以歸盡(요승화이귀진) 오로지 자연의 조화에 따르다 돌아가고 마는 것을,

樂夫天命復奚疑(낙부천명복해의) 천명을 누렸으면 그만이지,더 무엇 의심하리.

 

 

余家貧하여 耕植不足以自給하고 幼稚(유치)盈室이나 缾無儲粟(병무저속)하여

生生所資가 未見其術이라 親故多勸余爲長吏러니 脫然有懷(탈연유회)하되

求之靡途(미도)라 會有四方之事하여 諸侯以惠愛爲德이러니 家叔以余貧苦하여

遂見用於小邑이라

*나는 집이 가난하여 농사를 지어도 자급할 수 없었고,

어린 것들은 많은데 쌀독에는 쌀이 없어, 생활비를 마련할 방도가 없었다,

친척과 벗들이 나더러 관리가 되라고 여러 번 권하였고 나도 거리낄 것 없이

그러한 생각이 있었으되, (자리를)구하여도 길이 없었다,

때마침(會=適) 서울에 간 일이 있었는데, 諸侯가 은혜로써 德을 베푸셨고,

숙부께서도 나의 빈고(貧苦) 함을 아시고 추천해 주시어,

마침내 소읍(小邑)의 벼슬아치로 등용되었다,

 

於時風波未淨하여 心憚遠役이러니 彭澤(팽택)去家百里하고

公田之利가 足以爲潤이라 故로 便求之라 少日에 眷然(권연)有歸與之情이라

何則고 質性自然은 非矯勵(교여)所得이오 飢凍雖切이나 違己交病이라

嘗從人事러니 皆口腹自役이라

*그 때에는 天下가 아직 평온하지 못한 때라 멀리 나가서 일하기를 꺼려했으니,

팽택(彭澤)은 집에서 백리(百里) 정도 떨어져 있고 공전(公田)의

수입이 족히 넉넉하다고 여겼다,

그러므로 이곳으로 가기를 구했다,

얼마 안 되어 그리운 마음에 집에 돌아가려는 마음이 생겼다,

왜냐하면? 천성(天性)이 자연을 좋아 함은 억지로 고쳐질 수 있는 것이 아니요,

굶주림과 추위가 비록 절박하나, 나의 천성과 위배(違背) 되는 것은

더욱 괴로운 일이기 때문이다,

일찍이 남을 따라 일을 한 것은 다 먹고 살기 위해서 스스로 한 일이다,

 
於時悵然慷慨(창연강개)하여 深愧平生之志하고 猶望一稔(임)하여

當斂裳宵逝(염상소서)라 尋程氏妹喪於武昌하여 情在駿奔(준분)하니

自免去職이라 仲秋至多하니 在官八十餘日이라 因事順心하여

命篇曰歸去來兮라 乙巳歲十一月也라

*이에 서글프고 강개(慷慨) 하여 평소에 지녔던 뜻을 생각하면

몹시 부끄러웠고, 一 年이 되기를 기다려 衣冠을 챙겨 밤에 돌아가려 하였다,

오래지 않아(尋) 程氏에게 출가한 누이가 무창(武昌)에서 죽었다,

내 마음은 급히 달려가고 싶어 스스로 사직하였다,

음력 八月부터 겨울까지 관직에 있은지 80 여일이다,

사정을 근거로 하고 마음을 좇아서 이 篇名을 귀거래혜(歸去來兮)라 하였다,

乙巳년 十 一 月의 일이다.

 

*도연명(陶淵明)은 젊어서부터 높은 포부를 가졌고 박학능문(博學能文) 했다,

일찍이 오류 선생전(五柳 先生傳)을 지어 자신에게 비유하였다,

어버이가 늙고 집이 가난하여 다섯 번이나 관리 생활을 하기도 하였으나,

마지막으로 팽택령(彭澤令)이 되었다가 군(郡)에서 독우(督郵)가

나와 순시를 하자 내 어찌 오두미(五斗米) 때문에

향리소아(鄕里小兒)들에게 허리를 굽힐 소냐?

하고 사직하며 이 글로써 자신의 뜻을 읊었다고도 한다,

그 이후로는 오직 전원에서 궁경자급(躬耕自給)하며

시주(詩酒)를 즐기며 일생을 보내니,

세상에서는 그를 정절선생(靖節先生) 이라고 부른다,

전원으로 돌아가는 도연명의 자연애와 인생관이 잘 표현 되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