箴言(잠언)

斗室記(두실기)-李植(이식)

華谷.千里香 2015. 11. 21. 12:22

 

斗室記(두실기)-李植(이식)


舍弟材寓居常山縣之斗谷(사제재우거상산현지두곡) :
         나의 사제(舍弟)인 재(材)가 상산현(常山縣) 두곡(斗谷)에 우거(寓居)하면서,
就寓舍西北偏稍淸奧處(취우사서북편초청오처) : 그 집의 서북쪽으로

           매우 비좁은 공간이나마 맑은 정취가 우러나는 그윽한 곳을 택하여,
築室三架(축실삼가) : 세 칸의 방을 만들고
覆以茅(복이모) : 띠풀로 지붕을 덮는 등
制從儉(제종검) : 간소하게 집을 짓고는,
以爲宴居讀書之所(이위연거독서지소) : 연거(宴居)하며 독서하는 곳으로 삼았기에,
余名其扁曰斗室(여명기편왈두실) :

            내가 그 집의 이름을 두실(斗室)이라고 지어 주었다.
蓋俗謂室之方而狹者曰斗室(개속위실지방이협자왈두실) : 
      대개 민간에서 모난 형태의 협소한 집을 두실(斗室)이라고 부르는 이유도 있고,
國音谷亦謂之室(국음곡역위지실) :

                     우리나라 발음에 곡(谷)을 ‘실’이라고 하기 때문에
因谷而名室(인곡이명실) :

                   그가 사는 곡(谷)의 지명에 착안하여 실(室)이라고 이름 붙인 것이니,
亦從簡也(역종간야) : 또한 간단한 방식을 따라서 이름 지은 것이다
亡友任茂叔(망우임무숙) : 세상을 떠난 나의 벗

                      임무숙(任茂叔; 무숙은 任叔英의 字)이 일찍이
嘗爲人作斗亭記數千言(상위인작두정기수천언) :
             어떤 이를 위해 두정기(斗亭記) 수천 언(言)을 지어 준 적이 있었다.
其說以凡人往來於亭中者(기설이범인왕래어정중자) :
                    그 내용을 보면 정자를 왕래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如以斗量物(여이두량물) : 마치 말[斗]로 물건을 되듯 하면서,
仍歷敍世間人物數十種(잉력서세간인물수십종) :
             세간의 인물들을 수십 종으로 분류하여 차례로 서술해 나간 것이었는데,
其文倣包朴子人品而語特奇(기문방포박자인품이어특기) :

       그 글이 포박자(抱朴子)의 인품론(人品論)과 비슷하면서도

       그 표현이 특히나 기발하였기 때문에,
學者多傳誦焉(학자다전송언) : 학자들이 많이들 전송(傳誦)하였다.
今材寓居僻塢(금재우거벽오) :

          하지만 지금 재(材)가 우거하는 곳은 궁벽진 산골이라서
人物之往來絶少(인물지왕래절소) : 왕래하는 사람들도 거의 없을 뿐만이 아니요,
止以是爲讀書之室(지이시위독서지실) :

                  또 이곳을 단지 독서하는 공간으로만 삼고 있을 따름이니,
不當更取任子之說騈拇之也(불당경취임자지설병무지야) :
      임자(任子)의 설을 다시 취해서 덧붙이는 것은 온당한 일이 되지 못하겠기에,
特以余之少來讀書粗法(특이여지소래독서조법) : 
             그저 나 자신이 젊어서부터 행해 온 나름대로의 독서법이나
密相授焉(밀상수언) : 은밀히 전해 볼까 한다.
余性甚魯習甚慵(여성심로습심용) :
             나는 성품이 무척이나 노둔한 데다 습관 또한 게으르기 짝이 없는데,
少又多疾病(소우다질병) : 젊어서부터 또 병치레를 많이 하는 바람에
不能着力讀書(불능착력독서) : 제대로 독서에 공력을 들이지 못하였다.
雖病間(수병간) : 그리고 병이 좀 뜸해질 때면
輒親簡冊(첩친간책) : 문득 간책(簡冊)을 가까이 해 보기도 하였지만,
讀不過三四遍(독불과삼사편) : 서너 번 읽어 보는 것에 불과하였고
甚則一遮眼而已(심즉일차안이이) :
           심할 경우에는 눈가림용으로 한번 스쳐 지나가는 것이 고작이었다.
然方其讀閱時(연방기독열시) : 하지만 바야흐로 열독(閱讀)할 때에 이르러서는,
經則略究其義理而驗之於身(경즉략구기의리이험지어신) :
             경(經)의 경우는 대략 그 의리를 탐구한 다음에 내 몸에 적용을 해 보고,
史則略究其得失而擬之於今(사칙략구기득실이의지어금):

        사(史)일 경우에는 그 득실(得失) 관계를 대략 따져 본 다음에

        오늘날의 세상에 비추어 보곤 하였으며,
詩若文則略倣其意義而思欲出之於吾之口

(시약문칙략방기의의이사욕출지어오지구) :
             운문이나 산문의 경우에는 대략 그 의의(意義)를 본따서 나의 입으로

             표현해 보려고 노력하곤 하였다.
以此方其讀時覺有味(이차방기독시각유미) :

                  이러한 방식으로 읽다 보면 재미도 있을 뿐 더러
久而或能記也(구이혹능기야) : 시간이 오래 지난 뒤에도 간혹 기억이 나곤 하였다.
其後視與余共讀者(기후시여여공독자) :

                    그런데 그 뒤에 나와 함께 글을 읽은 사람들을 보면,
頗聰敏(파총민) : 상당히 총명하고 민첩할 뿐만 아니라
且勤讀輒倍數而常苦忘(차근독첩배수이상고망) :
                          독서에 쏟는 공력도 나의 몇 배는 되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쉽게 잊어버린다고 늘 고민하고 있었다.
余怪而究其故(여괴이구기고) : 그래서 내가 괴이하게 여겨 그 까닭을 물어보면,
則曰吾讀經(칙왈오독경) : 그들이 대답하기를, “나는 경(經)을 읽을 적에는
要通之於講席也(요통지어강석야) : 강석(講席)에서 합격될 수 있도록 힘을 쏟고,
吾讀史(오독사) : 사(史)를 읽거나
或讀詩若文(혹독시약문) : 시문(詩文)을 대할 때에는
要采之於科場也(요채지어과장야):

                 과장(科場)에서 채택되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한다.
嗟乎(차호) : 아,
經以明道(경이명도) : 경을 읽는 목적은 도를 밝히기 위함이요,
史以稽古(사이계고) : 사(史)는 옛날 일을 상고하기 위함이요,
詩文以纂言(시문이찬언) : 시문은 나의 글을 짓기 위함이다.
是皆聖賢進德修業之資(시개성현진덕수업지자) : 
       그러니 이것은 모두가 성현의 덕을 쌓고 수업해 나가는 바탕이 되는 것들이지,
固不爲科試設也(고불위과시설야) :

                    과시(科試)를 잘 치르기 위해서 마련된 것은 결코 아니다.
而學者以是心讀之(이학자이시심독지) :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우는 이들이 그런 마음을 갖고 읽어 나간다면,
則固與古聖賢本旨(즉고여고성현본지) : 참으로 옛 성현들의 본지(本旨)와는
相刺繆矣(상자무의) : 어긋난다 할 것이니,
其汗漫遺亡(기한만유망) : 시간이 지나면서 흐릿해져 기억에서 사라져 버린다고
向足怪哉(향족괴재) : 괴이하게 여길 것이 뭐가 있겠는가.
噫余向者讀書(희여향자독서) : 아, 나는 그동안 글을 읽을 때
雖不以科試爲心(수불이과시위심) : 과시(科試)를 염두에 두지는 않았지만,
而所病者略而不精也(이소병자략이불정야) :
           대충 보고 넘어갈 뿐 정밀하게 연구하지 못한 병통이 있었다.
故雖驗之於身(고수험지어신) : 그래서 경(經)을 내 몸에 적용해 보았어도
而無以充其志(이무이충기지) : 그 뜻을 충만하게 채울 수가 없었고,
雖擬之於今(수의지어금) : 사(史)를 오늘날에 견주어 보았어도
而無以施諸事(이무이시제사) : 조치해서 시행할 수가 없었으며,
雖思欲出之於吾之口(수사욕출지어오지구) :
        시문을 보고 나의 목소리로 표현해 보려고 생각했어도
而無以潤色於撰造(이무이윤색어찬조) : 글 지을 때 윤색(潤色)을 할 수가 없었다.
至今兀然爲一庸人耳(지금올연위일용인이) : 
  그리하여 오늘날까지 우두커니 서서 범속한 차원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顧以其讀之有味(고이기독지유미) :
       그러나 돌이켜 보건대, 글을 읽는 것 자체에 재미를 느낀 나머지
而久而或能記(이구이혹능기) :

                   시간이 오래 지나도 간혹 기억해 낼 수가 있었기 때문에
故反有資於科試而得之(고반유자어과시이득지) :
             거꾸로 과시(科試)에 도움이 되어 급제할 수 있었으니,
此匠慶忘賞成簴之效也(차장경망상성거지효야) :
         이는 장경(匠慶)이 상 받을 것은 아예 생각지도 않는 가운데

         우(虞) 제사를 제대로 지내게 하였던 일과 비슷한 경우라고 할 것이다.
今材貧而多役(금재빈이다역) : 지금 재(材)가 빈한한 살림에 해야 할 일은 많아
常苦不能勤誦習(상고불능근송습):

               근실하게 송습(誦習)하지 못하는 것을 늘 고민하고 있는데,
幸以吾法試之(행이오법시지) : 행여 나의 독서법을 가지고 시험해 본다면
則未必無所補也(즉미필무소보야) : 도움이 되는 점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
如欲更究古聖賢讀書之法(여욕경구고성현독서지법) :
            그런데 가령 옛날 성현들의 독서법을 다시금 찾아 보려 한다면,
則有不然者(즉유불연자) : 나의 방법과는 같지 않은 점이 있으니,
所謂循序而漸進(소위순서이점진) : 단계를 밟아 점차적으로 나아가고
熟讀而精思(숙독이정사) : 숙독(熟讀)을 하면서 정밀하게 사색하는 것이
其大要也(기대요야) : 그 대요(大要)라 할 것이다.
顧吾未嘗行之(고오미상행지) : 그러나 나 역시 그 방법대로 행해 본 적이 없으니
不敢必之於材(불감필지어재) :

                   감히 재(材)에게 꼭 그렇게 하라고 요구할 수는 없는데,
材如有意於此(재여유의어차) : 재가 만약 그런 뜻을 갖고 있다면
則可以捨我粗法矣(칙가이사아조법의) :

                  나의 조악(粗惡)한 독서법은 버려도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