古今笑叢(고금소총)

何晩相見(하만상견):우리의 서로 만남은 어찌 늦소

華谷.千里香 2017. 8. 21. 22:57

 

 

 

何晩相見(하만상견):우리의 서로 만남은 어찌 늦소
 隣里常漢之妻 年纔(겨우)二十許 頗有姿色而

이웃 마을의 상놈의 처가 나이 겨우 스무 살 쯤 이었는데 자못 자색이 있었다.

每日汲水 往來於班家舍廊前矣어늘

매일 물을 길으러 양반집 시랑 채 앞을 왕래했다.

其主人 窃欲有意於女

그 주인이 몰래 그 여자에게 뜻을 갖고자 하였었으나

每耳目 繁多하야 無以이러니

그때마다 사람의 이목이 많아서 틈을 탈 수 없었다.

一日 厥女 戴水盆來而 適從容故

하루는 그 여자가 물 항아리를 이고 오는데 마침 주번이 조용하므로

以跣(맨발)下堂하야 執其兩耳合口則 厥女

맨발로 청 아래로 내려가서 그 여자의 두 쪽 귀를 잡고 입을 맞춘 즉,

高聲發惡하니 其家母出而詬(꾸짖을 후()하고

그 여자가 큰 소리를 지르며 발악을 했다. 그 어미가 나와서 욕을 하고 꾸짖고

厥夫又出詬辱(구욕)이

그 남편도 또한 나와서 욕하고 꾸짖으니

厥班 已有作罪過之事하야

그 양반은 이미 지은 죄가 있는지라

聽而不聞하고 隱身避之 有口無言이어늘  

듣고서도 못들은 척하고 몸을 숨겨 그들을 피하고, 입이 있어도 말을 못했다.
厥夫乘勝하야 又爲呈官則 自官捉致厥班與厥漢하야

그 사나이가 이긴 기세를 타서 관가에 고소를 하니,

관가에서 그 양반과 그 상놈을 잡아들여서

對坐問曰 “汝雖兩班이나 有夫之女

대좌시켜놓고 묻기를 “너는 비록 양반이기는 하나 남편이 있는 여자를

無難合口하니 是豈兩班之道乎”아.

스스럼없이 입을 맞추었으니 이것을 어찌 양반의 도리이요.”

厥班曰 “合口之民 罪當甘受而

그 양반의 하는 말, “백성의 입을 맞춘 것은 죄를 마땅히 감수하겠으나.

彼漢之母子 無限辱兩班하야 隣里共知하니

그 사나이의 모자가 양반에게 한없이 욕을 하여 이웃 마을사람이 모두 알고 있으니

其罪 何不治之乎”잇가.

그 죄를 어찌 다스리지 않으십니까?”

官曰 “法典 自在 當從法施行矣”리라 하고

원님이 말하기를 “법전이 스스로 있으니, 마땅히 법에 따라 시행할 것이다.

分付刑吏曰 “持大典通編來”하라 한대,

형리에게 분부하는 말하기를, ”대전통편을 가져오너라!“

出通編하니 問刑吏曰

(형리가) 통편을 내오니, (원님이)형리에게 묻어 말하기를,

“兩班 與常漢之妻執耳合口則 其罪如何”.

”양반이 상놈의 처와 귀를 당겨 입맞춤을 했다면 그 죄가 어떠하냐? 하니,

刑吏曰 “無如此律文”이니이다.

형리 하는 말, “그런 것에 대한 법조문은 없습니다.”라 하니,

官曰 “然則 常漢 詬辱兩班 其罪如何”오.

원님이 말하기를, “그렇다면 상놈이 양반에게 욕을 한다면 그 죄는 어떠하나?”

刑吏曰 “刑問三次 遠地定配矣”니이다.

형리가 말하기를, “형문(刑問) 세 차례에다가 먼 곳으로 귀양 보냅니다.” 라 했다.
 
官曰 “旣無合口之罪하니 兩班 放送하고

원님이 하는 말, “이미 율법에 입을 맞춘 죄는 없으니 양반은 풀어 보내고,

有兩班詬辱之罪하니 厥漢 爲先刑問一次 捉囚”하라.

양반에게 욕을 한 죄는 법에 있으니

먼저 그 상놈에게 형문을 한 차례하고 잡아 가두어라!”

兩班 還家則 厥漢之母 懇乞曰

양반이 집에 돌아오니, 그 상놈의 어미가 간절히 빌면서 하는 말,

“無識之漢不知兩班之畏嚴하고 如是冒(무릅쓸)하니

“무식한 놈이 양반 무서운 줄 모르고 이와 같은 죄를 지었으니,

伏望寬恕 以免定配之地千萬千萬”하노이다.

관대히 용서하시기를 복망합니다.

 

귀양살이 가는 것을 면해주시면 천만번 고맙겠습니다.”
班曰 “汝之母子自來無嚴하야 不知兩班之所重이니

양반 하는 말 “너희 모자는 원래부터 버릇이 없어

양반의 소중함을 알지 못하고 있다.

其然之漢不可仍置 當知法矣니,

그런 놈은 그대로 두어서는 안 되니, 마땅히 법의 무서움을 알게 하리라.

更勿多言 退去也”하라,

다시 더 말하지 말고 석 물러가라!”

厥女歸家하야 謂子婦曰 “吾雖萬端懇乞이나

그 여자가 집으로 돌아와 며느리에게 하는 말,

 “내가 비록 온갖 방법을 다해서 애걸 했으나

終不回聽이니 必也定配後乃已리라.

끝내 들어주지 않으니 반드시 유배를 정해버리게 되고 말 것이다

此將奈何오. 汝가 第(제발)往善乞也”하라.
이를 장차 어떻게 하지? 네가 제발 가서 잘 빌어 보아라.” 
子婦 冒羞來乞於廳下曰

며느리가 수치를 무릅쓰고 (양반에게) 와서 대청 아래에서 애걸하기를

“小女之夫 本不飮酒矣 偶飮一盃而大醉하야

“소녀의 지아비는 본시 술을 못 마십니다. 우연히 한잔 한 것이 대취가 되어

酒中狂言妄說而已 不辱兩班이어늘

술이 취한 가운데 미친 말을 하고 흩은 소리를 했을 뿐이며,

양반을 모욕한 것이 아니오니,

伏望寬恕焉”하노이다.

관용을 베풀어 주시기 엎드려 비나이다.”

班曰 “汝在廳下하야 泛泛(범범)乞之則 吾能容恕乎아.

양반 하는 말, “너는 대청 아래에서 뻔뻔스럽게 애걸하고 있는데

내가 용서를 하겠는가?

雖入房懇乞이라도 終未知如何어니와

 비록 방에 들어와서 간곡하게 애걸해도 끝내 어떻게 될지 모를 것인데

況在廳下乎“ 하니,

항차 대청 밑에 있다니(대청 아래에서 빌다니)!”
厥女含羞하고 不得已入房則

그 여자가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부득이 방에 들어갔더니,

厥班(당길)其手而近坐하야 抱其頭而合口曰

그 양반이 손을 붙들고 곁에 앉히고

그 여자의 머리를 끌어안고 입을 맞추면서 하는 말,

”汝之來乞如是懇惻(가여울)하니, 吾當厚恕矣“라 하며

“네가 와서 이렇게 간곡하게 애걸하는 것이 측은하니

나는 마땅히 너그럽게 용서하겠다.”

卽其地合歡則 女少無厭色하야

즉각 그 자리에서 즐거움을 함께하니, 여자는 싫어하는 기색이 거의 없었으며,

乃曰 ”何相見之晩也“오 하고

 그녀가 곧 하는 말. “우리가 서로 만나는 것이

어찌 이렇게 늦었단 말이요?”하고 나서

欣欣而去어늘 厥班 入官拜謁曰

매우 흡족해 하며 돌아갔다. 그 양반은 관가에 들어와서 원님을 배알하여 말하기를,

”厥漢之罪刑問一次라니 足懲其罪 放送 伏望“하나이다.

“그 놈의 죄는 형문 한 차례로 그 죄를 징계했으니 놓아

보내기를 엎드려 바랍니다.”  

官曰 ”今則可知其成事也“라 한즉,

원님은 가로대, ”이제야 그 일이 성사된 것을 알 수 있겠다.“ 라고 말하니,

兩班 含笑矣어늘 厥漢卽爲放送이러라.
양반은 웃음을 머금었고, 그 상놈이 즉시 석방되더라.

※泛泛(범범):데면데면하게